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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탈하고 평온한 것이 더욱 소중해지는 요즘

현아

by 오늘도 나마스떼 Feb 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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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돌아오게 한 변곡점이라...     


음.. 먼저 제가 최근에 본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시작해 볼까 해요.      


저는 주말에 왠지 주말밤이 가는 것이 아쉬워 꼭 영화 하나라도 보고는 하는데요. 지난달에 넷플릭스에 아주 예전에 흥미롭게 봤던 영화가 올라와서 다시 보게 되었어요. 약간 황당한 설정들이 많은 영화이긴 한데, “웃프다.”는 표현이 딱인 상황들이 많기도 하고, 가끔은 역설적인 웃음이 빵 터지기도 하는 그런 부분들이 있는 영화입니다.      


주요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남자 주인공이 시한부 판정을 받으면서 진행되는 스토리”인데, 나중에 오진임이 밝혀지면서 “웃픈 상황”들이 펼쳐집니다.     


남자주인공이 자신의 인생에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인식한 이후부터는 사랑에 더 용감해지고, 더 너그러워지고, 더 이타적이게 되고, 순간순간 자신에게 더 소중하고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생각하면서 선택을 해요. 쓸데없는 것에 낭비할 시간이 없으니, 중요치 않은 것들에 대한 집착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막상 오진이었음이 밝혀져서 시한부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자, 남자 주인공은 허탈해(?) 하면서 “아... 앞으로 남은 긴 시간을 또 어떻게 보내냐...‘는 식으로 자조를 합니다.      


이 부분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시한부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남은 시간이 길게 남았다고 생각하면 감사해야 할 일 같은데, 오히려 앞으로 남아 있는 긴 시간을 살아 나가며 팍팍한 현실에 다시 부딪히는 일들이 막막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테니까요.          




이제 저의 ‘현실’로 돌아와 이야기를 이어 나가 보겠습니다.


이전 편지에서 잠시 이야기했던 '우주 속에서의 현실'을 먼저 얘기해볼게요, 지구는 현재도 쉬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계속 자전을 하며 낮과 밤을 만들어 내면서, 일정한 속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며 4계절을 만들어 내고 있고, 그 동안 사람들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주의 법칙' 내지 '자연에서의 현실'을 거스를 수 있는 생명체는 없고, 어쩌면 이 부분에 있어서 우주 혹은 자연은 지구의 모든 생명에게 ‘생로병사’라는 평등한 절댓값을 부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의 '현실'이야기를 한다면서 서론이 많이 길었는데,

공교롭게도 앞서 이야기한 영화를 보고 난 다음 날, 저희 아버지께서 복통을 호소하셔서 119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에 가신 후 담도암 진단을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정확한 검사와 진단을 위해 종합병원을 예약해 두고 기다리는 사이, 종양 때문에 담도가 막혀 담즙이 고여 염증이 생겼고, 그 염증이 전신에 번져 패혈증으로 돌아가실 뻔한 고비를 넘기시기도 했어요.


급히 고여있던 담즙을 빼내는 시술을 한 후 중환자실에 며칠을 의식 없이 누워계시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미처 아무도 생각지 못한 비상적인 일도 발생하여 급히 응급처치를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도저히 생각지도 않았고, 믿을 수도 없는 현실이 예고도 없이 너무나 갑자기 들이닥쳤습니다. 제가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신나게 사느라 나이 먹는 걸 까먹는 사이에, 지구는 태양 주위를 혼자 묵묵히 열심히도 돌고 돌아 부모님이 허약한 노인이 되어 계시다는 현실을 제게 알려주었죠.     


차라리 영화처럼 오진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정말 수도 없이 했습니다만, 현실은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는, 다능 님처럼 다음 날 컨디션 관리를 위해 어떻게라도 숙면을 반드시 사수하던 제가 밤사이 아버지가 어떻게 되어 버리실까 봐 조마조마해하며 아버지 옆에서 며칠 밤을 꼬박 새워 버리기도 했고요.  


지선 님처럼 저도 평소에는 잘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실체 없는 온갖 대상들에게 ‘아버지의 회복’을 위해 소원을 빌고 기도하는 일을 매분 매초 매 순간 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기도를 구하게 되었습니다.     


친가 쪽의 막둥이이자 늦둥이인 저를 보면 침침하던 눈이 밝아진다고 하여 친할머니가 붙여주셨던 '눈볼개'(아마 '눈 밝게 -> 눈볼개'로 변환된 사투리인 것 같아요.)라는 애칭을 이어받으셔서 저를 똑같이 '눈볼개'로 불러주시며 예뻐해 주시던, 얼마 전까지도 건강하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누워 사경을 헤매고 계시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고, 꿈인지 생시인지 현실감각도 없어지면서 그야말로 멘탈이 붕괴되기 일보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편지를 쓰며 떠올렸던, 잔소리해주시던 독서실 원장님 말씀이 계속 떠오르더라고요.


“시장바닥 같이 정신없는 상황에서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시험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그 말이 생각나면서, “아.. 그래. 지금 내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내가 현재 맡고 있는 일도, 나의 일상도, 가족들의 마음도 모두 무너지고 망가지겠다.” 싶어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매 순간 저에게 맡겨진 일들을 그저 퀘스트를 하나씩 깨듯이 차근차근 해 나가고 있습니다.     


지선 님이 “두려움은 알지 못하는 데서 온다.”라고 한 말도 생각이 나서, 현실에 직면해서 아버지의 병이 대체 어떤 질병인지 그리고 현재 정확히 어떠한 상황인것인지 더 잘 알고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도 하고 있어요.      


지금은 천우신조로 다행히 아버지가 의식을 많이 회복하셨고,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 기다리고 계시는 중인데,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빠르게 살이 빠지며 말라가시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과거의 일들, 현재의 일들, 미래의 일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느라 바쁜 머리와 지친 몸에 휴식을 주기 위해 요가를 하러 가고 싶지만, 현재는 우선순위에서 요가를 잠시 양보해 두고 있는 상황이에요.      


한편으로는 약 한 달 동안 있었던 각종 일들로 인해 제가 ‘업무로서’ 맡았던/맡고 있는 사건들의 의뢰인 분들의 ‘심정’을 머리만이 아닌 '마음으로' 온전하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냥 순간에 저의 온 몸을 통과하듯이 그 마음들이 받아들여지게 되더라고요.      


임플란트 시술을 위해 치아를 전부 뽑아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살이 갑자기 7~8킬로가 빠져 고생하시던 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중환자실에 계시면서 파생하게 된 일들로 인해 사건을 맡기신 분, 남편의 암투병 기간 동안 대소변을 받아내며 병시중을 했던 분, 수면제와 신경안정제 등 약물 복용 부작용으로 사건이 발생했던 분... 등등...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수많은 감정들이 저를 통과해 가면서 어쩌면 그동안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었던 부분들에 대해서 온전하게 마음으로써 공감을 하게 되었고, 삶과 죽음, 생로병사 등등 아주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을 보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아주 혼란스러울 수 있는 요즘인데요.


저는 요새 아무일 없이 무탈하고 평온한, 건강하고 자유로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번 깨닫는 현실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이 나현 님의 물음에 대한 답이 되었을까요. 나현 님, 지선님, 다능님의 편지를 읽고 있으면 정겹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져서 위로와 힘이 됩니다.     


그리고 다능님, 약 한 달간 요가수련을 통해 만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오늘은 다능 님께 특별한 질문보다는, 그저 다능 님의 일상적인 근황을 듣고 싶네요.     


무탈하고 평온하게 지내고 계신가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사진 : 안나현 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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