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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 회사원 김씨 Nov 13. 2023

프롤로그 - 김씨의 독서론

 나는 책을 읽고 나면 그 책에 평점을 매긴다. 가장 높은 점수는 S, 그리고 A, B, C 순이다. 보통은 B정도의 점수를 준다. A는 좋은책 C는 내 돈과 시간을 빼앗은 나쁜책이다. S는 정말 가끔 볼 수 있는 훌륭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평점을 매기는 기준은 두가지 이다. 하나는 “나에게 지적 충격을 주었는가?” 다른 하나는 “재미있었는가”이다. 어떤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꼭 무엇이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책에서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지 알려주는 독서법 책도 팔리고 있다.


 나는 앞서 말했듯이 무엇인가 내 머릿속에 불을 켜주는 그래서 “유레카”를 외칠 수 있는 책을 좋은 책의 요소로 생각한다. 내가 평소에 익숙했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맞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전복시키는 책들 그래서 뒤통수를 쎄게 맞은 듯한 충격에 얼얼해 하면서도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기뻐할 수 있는 책들 그런책들을 좋아한다. 모든 사물의 다른면을 보여주고 그늘속에 숨어있던 것을 끝끝내 비추어 나에게 보여주는 책들 그래서 어떤 때는 거북하고 피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한 그런 책들을 사랑한다.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그 내용 중 배울점을 추출하여 액기스를 머릿속에 꼼꼼히 기억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독서론 책에서 사람들이 독서에 실망하여 그만두는 이유로 무엇인가 배우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라는 분석을 들었는데 나는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독서를 통해 무엇인가를 꼭 배워야 한다니 이것 어디서 많이 본 광경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학교에서 꽤 오랫동안 그것을 했었다. 책을 펴고 읽고 그 속의 지식을 꼼꼼히 이해하고 암기했다. 책을 읽으며 무엇인가 배워야 한다면 그것은 독서가 아니라 공부다. 우리는 공부에 익숙하기 때문에 독서를 하면서도 꼭 무엇인가 배워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책 한권을 다 읽었는데 몇 개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면 괜히 시간 낭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공부가 즐거운 사람도 있겠지만 얼마나 되겠는가? 왜 평소에 거들떠도 안보던 책이 시험기간에 공부해야 할 때면 그리도 재미있던지. 내가 세계문학전집의 고전문학을 가장 많이 읽어댔던 때가 고등학교, 대학교 때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빡쎄게 공부하던 시기와 공교롭게도 일치한다. 공부할래 아니면 고전 읽을래. 기꺼운 마음으로 고전을 읽겠다.


 독서에서 무엇인가 꼭 얻어야 한다는 것은 독서를 수단으로 여기는 것이다. 나는 독서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독서가라면 독서하는 행위 그 자체에서 희열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재미를 좋은 책의 두번째 덕목으로 넣은 이유이기도 하다.

 어떤 때는 별 내용 없이 그냥 실실 웃으며 즐겁게 읽어나갈때가 있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책을 고를 수도 있고 그런 책을 우연히 손에 쥐게 되어 그렇게 될 수도 있다. 아무렴 어떤가? 이토록 즐거운 독서라니. 그러나 재미만 들어간 독서만 계속하면 일순 공허해 진다. 인스턴트 음식과 패스트 푸드가 아무리 맛있어도 몇 끼 연속 먹으면 수수하지만 영양만점인 집밥이 땡기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마눌님 손맛이 대령숙수급이라 영양균형도 잘 맞고 맛까지 눈물이 날 정도로 좋다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내가 A나 S를 주는 책이 그런 책이다. 잘 차려진 음식, 맛도 모양도 영양도 흠잡을데 없는 그런 음식과 같다.

그러니 꼭 무엇인가 얻겠다는 독서를 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건강을 위해 소금간도 안한 뻑뻑한 닭가슴살을 꾸역꾸역 먹는 것도 개인 취향이다.


 물론 나도 독서를 통해 무엇인가를 얻는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내가 책을 읽어서 무엇인가 얻는다면 그것은 얻기 위해 노력해서가 아니라 그냥 책을 읽다보니 내 몸에 스며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독서는 그렇다. 그냥 책이 좋아 읽고 읽다 보니 즐겁고 그러면서 무엇인가 얻기도 하는 것. 그러니까 무엇인가 얻었다면 그것을 의도했던 것이 아니라 그냥 부수적으로 딸려온 것이다.


 결론을 요약하자면 즐겁지 않으면 독서가 아니다. 그것은 공부다. 즐거운 가운데 새로운 것들을 마주하고 가슴에 울림을 주는 문구를 발견한다면 당신은 좋은 책을 만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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