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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십대 회사원 김씨 Nov 27. 2023

우리를 고통에서 구원하소서

펜타닐  - 벤 웨스트호프 저 (출판사 : 소우주)

 몇 년 전 일이다. 휴일에 갑자기 누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 좀 말려 달라고. 아버지는 일을 그만 두신 후 집 앞에 화분 몇 개를 갖다 놓고 계절에 맞추어 꽃나무를 심고 가꾸는 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심고 싶은 꽃이 양귀비라는 것이 문제였다. 꽃 이름이 중국을 대표하는 미녀의 이름을 따왔을 정도이니 그 자태가 얼마나 고울지 상상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 식물의 즙이 그 유명한 아편이라는데 있다. 전화로 아버지를 설득하는데 아버지는 뭐가 문제냐고 화를 내신다. 당신께서 어린 시절에는 양귀비즙을 말린 것 즉 아편을 상비약으로 집집마다 가지고 있었고 배앓이, 진통, 해열에 아주 좋은 약이었다고 하신다. 뭐 그 시절 그 시골에 변변한 병원은 커녕 약국도 없었으니 자구책으로 그랬을 수도 있다지만 지금은 해열, 진통제는 편의점에서도 파는 시절이니 이것이 가능할 리 없다. 잘 타일러 그럼 아편이 없는 개양귀비를 키우시라고 설득은 했는데 못내 아쉬워하시는 듯 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마약들의 기원은 사실 오래 전부터 강력한 마취제, 진통제로 사용되던 약재였다. 아편의 성분 중 가장 잘 알려진 모르핀은 현재까지도 강력한 진통제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오피오이드 (Opioid, 아편성 진통제. 모르핀, 펜타닐, 옥시코돈, 메타돈, 트라마돌 등 매우 강력한 진통제, 마약들을 포함)는 가장 오래된 진통제이고 현재도 가장 널리 사용되는 진통제이자 마약류이다. 그렇다 대부분의 마약이 그것이 자연에서 추출했건 합성을 통해 인위적으로 만들어 졌건 그 기원은 사람들의 통증을 없애기 위한 약이었고 그 의도는 매우 선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처럼.  


 기존 천연 마약에서 합성마약으로 넘어가면서 과학자들은 인류를 구원할 진통제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더 안전하고 효과적인 진통제를 연구했다. 그리고 이는 합성 마약의 문을 열어 젖혔다. 물론 이러한 연구를 통해 기존의 진통제에서 진정제, 항우울증제, PTSD 치료제등의 정신 의약분야까지 용도가 확장되며 뇌의 항구적 변화를 통한 치료의 길을 열었다는 데에는 분명 큰 의미가 있다. 이는 지속적인 약물치료의 대안이 될 수 있고 이러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큰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선의가 좋은 결과를 끌어오지는 않는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에 널리 알려졌고 이를 바탕으로 음지의 화학자들이 수많은 합성 마약을 양산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일단 최종 제품의 구조와 합성 방법을 알았다면 제품을 만드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화학적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좋은 수율로 저 저렴하게 만드는 방법까지 개발할 수도 있다. 여기에 더해 일부 구조를 바꾼 유도체도 합성할 수 있다. 최근 'NPS' (New Psychoactive Substances) 즉 '신종 마약'이 증가하는 이유는 이러한 다양한 유도체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펜타닐이 마약으로 분류되어 금지된다면 그 구조 중 일부를 바꾼 신종 마약을 만들어 법망을 피해간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유도체를 포함하여 사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 그보다 훨씬 빠른 지경이다. 이러한 NPS의 무서운 점은 도대체 어떤 마약을 투여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데 있다. 워낙 새로운 마약이 쏟아지다 보니 일일이 확인도 어렵고 이들을 섞어서 쓰면 더더욱 일이 복잡해 진다. 특히 NPS는 어느 정도가 적정량인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 부지기수이다. 뭐를 흡입하는지도 얼마나 흡입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을 흡입하다 보니 약물 과다복용을 하는 경우가 흔해지고 이로 인한 사망 사고가 급증할 수 밖에 없다. 병을 고치는 약도 과다복용하면 독이 되는데 하물며 마약이야.


“독성학에는 ‘복용량이 독을 만든다.’는 오래된 격언이 있습니다.”

-        펜타닐 (벤 웨스트호프, p151)


 이처럼 마약이 만연하고 미국의 50세 이하 사망원인 1위가 약물 과다 복용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마약의 종류가 다양해 졌고 구하기는 매우 쉬워졌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물류 배송의 발달로 인해 세계 어느 곳에서든 이들 마약을 받아 볼 수 있다. 이 마약들의 주요 공급국은 중국과 멕시코이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유도체까지 포괄하여 약물을 금지하지 않는다. 펜타닐이 불법이 되었다고 해도 펜타닐의 유도체 그러니까 염소를 하나 붙이거나 탄소를 하나 더한 구조의 물질은 여전히 합법적으로 판매가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주는 끝없이 이어질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이런 마약류의 전구체 (공정 하나나 두 개 정도만 더 하면 완제품이 되는 화학제품)를 대규모로 멕시코로 팔고 멕시코는 이를 이용해 마약을 제조하여 미국을 포함한 세계 시장에 뿌리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중국을 비난하고 ‘신아편전쟁’이라고까지 하고 있지만 여전히 중국은 이러한 화학제품 생산으로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고 여전히 인터넷으로 ‘합법적’인 판매를 하고 있다.


 물론 중국만 욕할 것은 못 된다. 애초에 많은 미국인들이 이러한 진통제에 의존하게 된 것은 제약회사의 강력한 로비와 이를 받아 무분별하게 처방전을 남용한 미국의 의사들에게 원죄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실한 의료시스템과 과도한 의료비 부담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진통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결국 이러한 환경들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미국인들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미증유의 사회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50대 이하 사망원인 1위. 가장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젊은 사람들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이를 10~30대로 좁히면 이 비중이 더 크게 늘어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있을 때 내 화학자 동료와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그 동료가 조금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를 내게 해주었다.


 “한국 10~30대의 사망률 1위는 자살이지요. 미국은 약물 과다 복용이구요.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요. 미국의 젊은 친구들이 약물을 먹고 죽는 것과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살하는 것이 어쩌면 같은 것이 아닐까 하구요. 미국의 젊은이들은 약물로 자살을 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럴 수도 있겠구나. 현재의 삶이 힘들어 그것을 견디기 어려워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사람. 현재의 삶이 너무 팍팍해서 이를 잊기 위해 죽음에 이를 것을 알면서도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 어쩌면 그 기저에 깔린 원인은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그의 통찰력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약물을 구하기 쉬워졌다는 것보다 의료 시스템의 붕괴라는 것보다 그 아래에 깔려있는 삶에 대한 불안과 절망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현재의 삶이 어렵지 않다면 아니 최소한 내일이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라도 하다면 자신의 미래를 망칠 약물에 의존하는 길을 일부러 가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러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사회의 좀 더 근원적인 시스템에 대한 변화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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