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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채로운 윤슬 Jul 22. 2024

갑상선 암이 예비 부부에게 준 선물

달라진 식생활

드넓은 우주에 한점 티끌인 당신과 내가
춤추며 떠돌다 서로를 알아챈 여기,
이토록 근사한 사건을 축복합니다

티끌이 티끌에게, 김선우



그와 함께 이금희 아나운서 토크 콘서트에 갔을 때 알게 된 시 한 편.


그를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었을텐데,

인연이 되어 그와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는 게 기적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음에 들어 꼭꼭 기록해두었다가

청첩장 문구로 쓰려고 했었는데

언제 쓸 수 있을까.








패스트푸드를 즐겨먹던 그는

갑상선 암 수술 후에 식생활이 완전 달라졌다.

 

퇴원한 이후로 삼겹살과 치킨, 감자튀김 그리고 탄산음료를 먹지 않았다.

그리고 그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싶은 마음에 직접 요리를 하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즉석밥 대신에 직접 밥을 해먹고

흰 쌀밥 대신 잡곡밥을,

설탕 대신 스테비아 설탕을,

인공감미료 대신에 양파와 파 그리고 마늘로 단맛과 감칠맛을 더했다.



직접 요리를 하는 날이 늘어가고

간편식을 멀리하다보니

어쩌다 먹는 즉석밥에서 약품 냄새가 느껴지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에도 약 냄새가 스쳐지나갔다.



건강식을 주로 먹다보니 사먹는 것보다 직접해 먹어야겠다는 경각심이 더욱 들었다.

예전의 식생활이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 피부로 느껴졌다.



그가 아프기 전에는

퇴근 후에 누워서 휴대폰으로 배달앱을 켜서 먹고 싶은 것을 손가락 까딱해서 주문하고,

배달이 오면 음식 맛을 음미하기보다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음식을 삼키기 바빴고,

음식을 다 먹으면 또 그대로 누워서 sns를 훑어보는 생활을 했었다.


설탕과 조미료가 가득 들어간 달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며

몸 속 영양소를 채우기보다는

입이 즐거운 음식을 찾았기에 살이 찌고 건강을 해친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퇴근하고나서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나면 피곤한 나머지 소파에서 티비보며 쉬다가 잠들기 일쑤였다.

종종 그가 설거지를 도맡아줬지만, 꼼꼼한 그의 성격에 한시간 가까이 설거지하는 모습을 보면 짠한 마음도 들었다.


집에서 밥을 해먹는 시간이 늘어나니 그가 식기세척기를 사는 게 어떠냐며, 설거지하는 시간에 운동을 하러 가는 게 어떠냐 물었다. 신혼집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그는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음식물 분쇄기를 사자고 얘기를 했지만 나는 돈이 아깝다는 핑계로 계속 미뤄왔었다.


하지만 그가 아픈 이후로,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돈 보다 더 중요함을 느꼈기에 흔쾌히 식기세척기를 사자고 했다.



얼마 후, 집에 식기세척기가 설치됐다.

그는 식기세척기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어보고 필요한 부분을 내게 캡쳐해서 보내주었다.


나는 사용설명서를 잘 읽지 않는 타입이다.

이것 저것 눌러보면서 직접 부딪히며 배우는 스타일이기 때문이었다.

사용설명서를 다 읽고 싶지 않아서 그가 캡쳐를 해서 보내준 부분을 꼼꼼히 읽고 머리에 새겨넣었다.



식사를 마치고 식기세척기에 설거지를 맡기고

남는 시간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기 시작하니

군살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운동을 시작하니 엉망으로 느껴지던 하루가 바르게 잡힌 느낌이 든다.

운동은 건강한 신체도 만들어주지만 올바른 정신도 깃들게 해준다.

운동의 힘은 참으로 컸다.



헬스가 지겨운 날에는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 들려 맨발로 밤산책을 하며 그와 수다를 떨었다.


"오빠, 나무 식기는 식세기에 넣으면 안 된대서 따로 설거지하니까 일이 크게 안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야.

나무 식기 쓴지도 좀 됐는데 버리고 식세기에 맞는 걸로 하나씩 바꿔야될 거 같아."


"나무 식기 쓰면 안 돼?"

그는 내게 되물었다.


그가 캡처해서 내게 보내준 사용설명서에 버젓이 적혀있었는데 그는 대체 뭘 읽었던 걸까ㅋㅋ

꼼꼼한 줄 알았는데 그가 놓치는 걸 내가 알려주는 상황이 신기했다.


서로 다른 성향에 다툰적도 많았지만

이렇게 다르기에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구나.




문득 예비 시부모님을 처음 뵌 날이 떠올랐다.

시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처음 데리고 온 여자친구가 신기하셨던 모양인지

그에게 "윤슬이 어디가 좋아?" 라고 물어보셨다.


그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내가 가지지 않은 걸 가져서 좋아."


이젠 그의 말에 깊이 공감된다.



결혼을 준비하며

서로 다른 가치관에 참 많이 다투었었는데

시간이 흐르며 문제가 하나씩 해결이 되고,


그 과정을 통해 대화를 깊이 나누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여태 연애하면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그와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거란 확신이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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