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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Jul 01. 2022

수산리- 닿고 싶은 곳

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제주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커다란 저수지가 있다는 수산리로 향했다. 제주에는 수산리가 두 곳이 있다. 하나는 동쪽에 위치한 성산읍 수산리, 다른 하나는 서쪽의 이곳 애월읍 수산리이다. 예로부터 물과 산이 함께 있는 곳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좋았던 모양이다. 같은 이름의 마을이 섬 하나에 두 군데나 있으니 말이다.


막상 도착해서  저수지는 그냥 인공적으로 물을 담아놓은 곳이라고 하기에는 크기가 상당히 컸다.  마치 자연적으로 형성된 거대한 호수를  마주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만들어진 유래가 궁금해 검색을 해봤다.


수산저수지는 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수산봉 동남쪽으로 위치한다.

1959년 3월 식량 생산을 목적으로 한 농업용 저수지로 속칭 답단이내[川]를 막고 저수지 공사를 시작하여 1960년 12월 12일 수산저수지를 준공하였다.

이때 오름가름 및 벵디 가름에 거주하는 70여 세대가 철거해야 했으며 이들은 제주시와 번데동, 구엄리 모감동 등으로 이주하였다.


제주에서 보기 드물게 큰 저수 면적과 수량을 자랑하고 있으며 조성 당시 주변에 수산봉과 사찰이 있고 수산저수지 옆에 제주도 천연기념물로 보호받고 있는 곰솔도 위치해 있어 풍광이 아름다웠다.  

출처: 제주환경일보


저수지를 둘러보기 전 수산봉에 올랐다. 제주도의 여느 오름처럼 산책길과 체육시설 등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곳곳에 시비가 놓여 있다는 점이었다.


"시가 참 좋네."


아내의 눈에 시비 하나가 들어온 모양이다.




닿고 싶은 곳 - 최문자



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늘 비어서 슬픔의 하중을 받던 곳


그쪽으로


죽음의 방향을 정하고서야


꽉 움켜잡았던 흙을 놓는다




새들도 마지막엔 땅으로 내려온다.


죽을 줄 아는 새들은 땅으로 내려온다.


새처럼 죽기 위하여 내려온다.




허공에 떴던 삶을 다 데리고 내려온다.


종종거리다가 


입술을 대고 싶은 슬픈 땅을 찾는다.


죽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서 있다.


아름다운 듯 서 있다.


참을 수 없는 무게를 들고


정신의 땀을 흘리고 있다




"죽음의 방향을 정하고서야 꽉 움켜잡았던 흙을 놓는다는 문구가 마음을 울리네."

나는 아내의 새삼스런 감성에 약간 놀라고 있었다.


"왜 아기가 태어날 때 두 손을 꽉 움켜쥐고 태어나서는 죽을 때는 두 손을 모두 펼친 채 죽는다고 하잖아. 나무도 우리랑 같을지도 몰라."


아내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뭔지도 모른 채 하나둘씩 움켜 잡았던 삶과 얽힌 그 무수한 집착들을 우리는 죽어서야 비로소 놓게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수산봉을 내려와 저수지에 다다랐다. 그곳엔 힘겨운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하는 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눈 내린 겨울에 물가에서 보면 그 새하얀 눈을 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백곰이 저수지의 물을 마시려고 웅크려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곰솔'이다. 곰솔을 보니 아까 보았던 최문자 시인의 '닿고 싶은 곳'이 떠올랐다. 어쩌면 시비를 설치한 이는 이 곰솔 때문에 '닿고 싶은 곳'을 고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늘 비어서 슬픔의 하중을 받던 곳


그쪽으로"


곰솔은 자신의 힘겨운 머리를 잔잔한 수면 위로 드리우고 있었다. 그 옛날 곰솔의 머리가 저수지 방향으로 향하는 순간, 곰솔은 오래된 뿌리로 잔뜩 움켜쥐었던 흙을 놓으며 죽을 결심을 한건 지도 몰랐다. 그렇게 죽음을 선택한 곰솔은 물속 슬픔 한가운데로 머리를 가라앉히며 생을 마감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숭고한 결심을 존중하지 않았다. 곰솔 주변 곳곳에는 그가 더 이상 쓰러지지 못하도록  지지대가 세워졌다. 단단한 철심으로 만든 지지대는 죽음에 대한 그의 의지를 철저히 가로막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그의 의지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없게 되고 말았.






"죽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서 있다.


아름다운 듯 서 있다.


참을 수 없는 무게를 들고


정신의 땀을 흘리고 있다"


그렇게 제 의지대로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있는 곰솔은
오늘도 아름다운 듯 서 있었다.
닿고 싶은 곳을 향하여



지지대로 둘러싸인 곰솔의 모습




이름도 에쁜 물메초등학교에 그려진 곰솔의 모습


수산봉에서 내려다 본 마을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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