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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ug 25. 2022

열람실 한가운데에는 대통령의 휘장이 있다.

꿈바당 어린이 도서관



바당은 제주 방언으로 바다를 뜻한다. 꿈이 가득한 어린이 도서관, 꿈바당 도서관은 원래 대통령이 제주에 내려왔을 때 사용했던 지방 공관으로 '지방 청와대'라고 불리기도 한 시설이었다. 그것이 1996년 대통령 경호시설에서 해제되고, 한 때 도지사의 관사로 사용되다가 원희룡 도지사 시절, 어린이 도서관으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최고 권력자로부터 지방의 권력자까지 아우르는 권력자들의 공간으로 사용되다가, 권력으로 치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어린이들의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새삼 의미 있게 다가왔다.



건물의 외관은 제주 전통 가옥의 지붕과 돌담을 형상화한 느낌이다.

대통령이 머무르는 공간으로 지어진 까닭에 건축 당시 인부 한 명 한 명마다 신분 조회를 했으며, 건축 설계도면 역시 제주도에 인계되지 않았다. 심지어 설계를 맡았던 건축사조차 출입을 제한당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보안과 경호에 있어서 완벽한 철옹성이었다.



연북로를 타고 구제주에서 신제주 방향으로 오다가 민오름 방향으로 조금 올라오면 오른쪽으로 어린이 도서관의 입구가 보인다. 상당히 넓은 면적의 부지임에도 높은 담장과 나무로 둘러싸인 까닭에 숨겨진 비밀의 장소 같은 느낌이 든다.



넓은 정원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파랗고 노란 원색의 벤치 두 개가 이곳이 권력자의 공간에서 어린이의 공간으로 바뀌었음을 상징적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벤치에 사용된 원색과 곡선의 디자인이 바르셀로나에서 보았던 구엘공원의 벤치를 연상케 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 열람실 한가운데에 대통령의 휘장이 걸려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었다. 어쩌면 이곳을 드나들며 책을 읽는 어린이 중의 누군가는 저 휘장을 보면서 대통령의 꿈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대통령의 휘장과 더불어 전국의 열람실 중 가장 화려한 조명을 갖고 있는 꿈바당 어린이 도서관의 열람실을 빠져나와 북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복도 계단에 올랐다. 복도 끝으로 건물의 뒷마당을 그림처럼 조망할 수 있는 긴 창이 운치 있게 놓여 있었다.



그 옛날, 권력자들이 술잔을 나누었던 연회장이 이제는 어린이들의 아기자기한 학습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야말로 권력무상임을 실감케 하는 장소였다. 벽면에 그려진 마주 보는 고양이와 개의 모습 또한 정겹기 짝이 없다.

 


안방(침실)과 거실은 원형을 최대한 살려 대통령 행정박물 전시실로 꾸며 놓았다. 마치, 드라마에 나오는 재벌가의 응접실 같은 느낌이었다. 문득, 어릴 적 보았던 드라마의 몇몇 장면들이 떠올랐다. 권력가 거나 재력가로 등장했던 그들은 저런 자리에 모여 앉아 음침하게 음모를 꾸미거나 살벌하게 재산 다툼을 하곤 했다.



고풍스러운 소파와 탁자 너머로 역대 대통령의 제주도에 관한 발언들이 전시되어 있다. 초기 대통령들이 주로 제주도의 개발과 번영들을 이야기했다면, 최근의 대통령들은 역시 자연환경의 보전에 방점을 찍고 있었다.






대통령이 침실로 사용하던 안방의 모습이다. 안방의 창문은 대통령의 신변보호를 위하여 방탄유리로 되어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매체에서는 많이 보았지만 실제 방탄유리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원빈 주연의 영화 '아저씨'의 저 유명한 대사가 떠올랐다.


"야, 이거 방탄유리야!"


하지만, 입안에서만 맴돌 뿐, 차마 입 밖으로 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방탄유리 너머로 보이는 워싱턴 야자수가 그런 나를 한심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어릴 적,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대통령 휘장을  바라보면서 대통령의 꿈을 키웠습니다. "


먼 훗날, 이곳을 거쳐간 어린이 중의 한 명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상상해 봤다. 물론, '꿈바당 어린이 도서관'이란 이름이 반드시 '대통령의 꿈'을 염두에 두고 지은 것은 아니겠지만, 이곳을 거쳐 훌륭한 대통령이 탄생된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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