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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May 19. 2018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알람브라 궁전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알람브라 궁전

          

11살 일기

‘꽃보다 할배’에서 보았던 알람브라 궁전에 갔다. 아빠가 카메라도 줘서 혁우랑 방송 놀이도 하며 재미있게 보냈다. 예의 없이 길을 막는 스페인 아이 때문에 기분이 나빴다. 우리에게 일본말로 인사를 하는 스페인 아이들도 있었다. 스페인 어른들은 좋지만 스페인 아이들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9살 일기

아빠는 뭐든지 형만 먼저다. 다음에는 내가 먼저 하게 해달라고 해야겠다.  



  

 알람브라 궁전으로 출발을 했다. 알람브라 궁전에 가려면 이사벨 광장에서 미니버스를 타야 했다. 하지만 한 푼이 아쉬운 우리는 그냥 걸어 올라가기로 했다. 아이들에게는 중간에 있는 젤라또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로 하는 걸로 꼬셨다. 교통비 절약하려다 간식비가 더 나올 것 같아 불안했지만, 어차피 버스를 타도 간식은 사줘야 하기에 그냥 아침 운동 삼아 걸어 오르기로 했다. 유럽에 와서 매일 먹고 있는 맥주로 불어 난 체중을 줄이려는 목적도 있었다.

    

 우리가 오늘 가려는 알람브라 궁전은 누에바 광장에서 오른쪽으로 나 있는 고메레스 길을 올라야 했다. 내일 갈 예정인 아랍인들의 오래된 마을 ‘알바이신 지구’는 누에바 광장에서 그대로 직진해서 다로 강을 따라가면 나온다. 길을 따라 조성된 상점가에 걸린 붉은빛 아랍풍 스카프들이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는 것처럼 손짓하듯 하늘거리고 있었다.  지름길로 간답시고 골목길을 잘못 찾아 들어가 길을 헤맸더니, 형제들은 벌써부터 힘들다며 툴툴거렸다. 하는 수 없이 궁전에 올라가자마자 과자를 사주기로 하고 입을 막았다.     

잘못 찾아 들어간 골목길에서 만난 막다른 집


알람브라 궁전의 입구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부터 수학여행 온 스페인 학생들까지 인산인해였다.  아름다운 일몰 무렵의 알람브라 궁전을 보기 위해선 오후 두 시가 넘어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아침에도 가득한 인파를 보니 그냥 일찍 오길 잘했다는 생각만 들뿐이었다. 오후가 되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릴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예상대로 매표창구의 줄은 어마어마하게 길었다. 예약을 못해 와서 마음이 급했던 나는 미리 파악해두었던 자동 발권기가 있는 장소로 향했다.  인터넷의 정보대로 그곳에는 아직까지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무조건 빨리 입장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장 빠른 입장시간의 티켓을 서둘러 발권했다.


 나스르 궁전의 입장시간이 30분밖에 남아있지 않은 터라 서둘러 가야 했다. 중앙 입구로 들어서자마자 나스르 궁전으로 향했다. 알람브라 궁전은 전체 입장인원도 제한되어 있었지만 그중 백미인 나스르 궁전은 티켓에 인쇄된 시간에만 입장할 수 있는 제약이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제한은 알람브라 궁전 옆에 카를로스 5세 궁전을 무리하게 짓는 바람에 약해져 버린 지반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그들의 세심한 정책도 배울 만했지만 무엇보다도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에게조차 불편을 요구할 줄 아는 그들의 당당함이 부러웠다.

 

나스르 궁전 입장 줄에 섰다.


“아빠! 한국 누나예요.”

     

젊은 여자 한 명이 셀카봉 끝에 달려있는 카메라를 보면서 한국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이 무슨 유튜브 개인방송을 하고 있는 듯했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다는 유럽 사람들도 그런 그녀의 행동이 신기했는지 흘끔흘끔 쳐다보고 있었다.

      

“저 누나 뭐 하는 거예요?”

“응 무슨 방송 같은 걸 하는가 봐.”

“나도 방송하고 싶다.”

“그럼 너희들도 찍어봐, 아빠가 카메라를 줄게. 대신 이 카메라는 망가뜨리면 안 돼.”   

  

촬영 놀이용으로 사주었던 액션캠을 세비야에서 장난치다가 박살을 냈던 아이들인지라 단단히 경고한 후, 카메라를 조심스럽게 건넸다. 그 덕분에, 오늘 알람브라 궁전의 풍경은 아쉽게도 휴대폰 사진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네르하에서의 휴식 때문인지 아이들의 요구에 좀 더 관대해진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카메라 끈 반드시 목에 걸고 절대 땅에 떨어뜨리면 안 돼.”

“아빠! 나는요.”

“넌 형 찍은 다음 시간 줄게.”

“맨 날 형만 먼저야.”  

   

뭘 해줘도 아이들 모두의 비위를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입이 퉁퉁 부운 혁우의 손을 잡고 나스르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

    


나스르 궁전, 두 자매의 방


세비야에서 알카사르를 먼저 보고 와서일까? 그토록 기대했던 공간이었건만 막상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세비야의 알카사르가 오히려 더 나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이슬람 건축물을 보는 것이 처음이 아니라 익숙해진 탓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원인은 시끄럽고 북적거리는 관람 환경에 있어 보였다. 보수 공사를 하는지 고막을 뚫을 듯이 쉴 새 없이 울려대는 드릴 소리와 알카사르와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은 관람객들의 말소리가 나의 집중을 방해하고 있었다. 이곳과 비교하면 알카사르는 거의 혼자서 구경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붉다’는 뜻의 아랍어 ‘알 함라(Al Hamra)’에서 유래했다는 알람브라 궁전은 붉은 느낌보다는 황토색의 그것에 가까웠다. 왕이 집무를 보았다는 메수아르 궁과 타지마할의 모델이 되었다는 아름다운 정원의 코마레스 궁을 지나 가장 아름답다는 사자의 궁전에 도달했다. 정원의 중앙에는 일반적인 궁전처럼  연못이 있는 대신 12개의 사자들이 커다란 물 받침대인 수반을 이고 있는 ‘사자의 분수’가 있었다. 만들어질 당시에는 해당 시간이 되면 해당 사자의 입에서 물이 흘러나와 시각을 알려주었다고 하니 그 기술력이 놀라웠다.

사자의 분수


우상숭배를 금하는 이슬람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을 그리거나 조각할 수 없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고도로 복잡한 형태가 연속되는 아라베스크 문양이었다. 하지만 이곳 사자의 궁전만은 예외였다. 이슬람 경전 ‘코란’에 나오는 12 궁도를 의미하는 이 12개의 사자 조각은 유대인 12 부족이 선물했다고 한다. 술탄이라 불리던 왕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후궁들의 방 맞은편에 이 사자 형상의 조각들을 설치해 그녀들을 지키고자 했다.

    

 메마른 사막지역에 살아 물을 중요시 여겼던 아랍인들은 지하수가 가득한 이곳 언덕에 궁전을 세우고 건물 속 정원인 중정마다 분수를 설치했다. 그들의 분수는 분수라기보다는 큰 음수대 같은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유럽의 분수가 응축된 에너지가 폭발하듯 거침없이 솟구치는 모습임에 반해, 이슬람의 그것은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용천수처럼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그 정적인 모습에서 명상의 기운마저 느껴졌다.


왕이 가장 사랑했다는 두 후궁들의 방인 ‘두 자매의 방’에 왔다. 사람과 동물을 표현하는 것이 금지된 이슬람 세계에서 왕으로 하여금 사자의 분수를 만들게 한 주인공들의 방이다. ‘두 자매의 방’ 천정에 수없이 매달려 있는 하얀 모라카베의 벌집 같은 곡선은 너무도 정교하고 자연스러워 사람의 기술이라기보다는 자연의 솜씨에 가깝게 느껴졌다. “자연의 선은 곡선이다.”라고 말했던 저 유명한 ‘성가족 성당’의 가우디 역시 이곳에서 힌트를 얻어 그의 초기 작품 “카사 비센스”의 실내 공간을 장식했다고 한다. 지극히 사람의 손이 많이 들어갔음에도 오히려 자연의 모습과 닮아 있는 창조물에서 가우디와 이 ‘두 자매의 방’의 장인에게는 같은 피가 흐르고 있는 듯했다. 어쩌면 가우디는 이 위대한 장인의 후손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 자매의 방 천장의 모습

 나스르 궁전을 나와 알카사바로 향했다. 발굴 중인 선사시대 유적이나 고대 도시의 폐허처럼 보이는 격자무늬의 바닥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곳을 지키는 병사들을 수용하던 막사의 흔적일까? 나중에 찾아보니 물을 저장하던 곳이라고 한다. 북아프리카의 사막의 혹독함을 경험한 이슬람 사람들은 물에 대한 관리가 다른 문명에 비해 훨씬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    

언뜻 병사들의 막사같이 보이지만 지하수나 빗물들을 저장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헤네랄리페 정원의 '소년 이순신'


사이프러스 나무가 사방 가득한 헤네랄리페 정원에 도착했다.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서는 하늘로 빨려 들어가 듯 하늘거리던 사이프러스 나무가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한낮의 강렬한 태양을 막아주고 있었다. 나무가 길게 이어 심어진 구간은 마치 제주의 미로공원처럼 정겨웠다.


갑자기 일우 또래로 보이는 스페인 남자아이가 우리 앞을 막아섰다. 지금은 촬영 중이니 돌아서 가야만 한단다. 소년의 너머로 실제로 몇몇 학생들이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마도 학교에 제출하기 위한 과제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길을 막고 있는 소년의 모습은 맹랑하기 짝이 없어 보였다. 사뭇 진지한 모습에서 어린 시절 전쟁놀이를 하면서도 어른에게조차 굽힘이 없었다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소년 이순신의 기개를 존중해서 자리를 피했다고 하는 이야기 속의 어른처럼 나 또한 미래의 스필버그 감독에게 조용히 길을 양보했다.     

사이프러스 나무가 가득했던 히네랄리페 정원


“뭐야. 자기네 길도 아니면서?”

    

하지만 일우는 불만 가득한 표정이었다. 과학자가 꿈인 일우는 또래 감독의 무례함에 쉽사리 수긍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알람브라 궁전에서부터 내려오는 길에는 스페인 학생들이 소풍을 왔는지 삼삼오오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그중 몇몇 소녀들이 지나가는 우리들에게 ‘곤니치와’라며 일본 인사를 했다. 그냥 지나치려다 수줍게 말하는 얼굴이 귀여워 가볍게 웃어주었다.

    

“아빠 왜 쟤들이 우리를 일본 사람으로 봐요?”

“우리가 서양 사람을 보면 다 미국 사람이라고 부르듯이 여기도 우리 같은 황인종을 보면 다 일본 사람으로 여기나 봐.”

“기분 나쁘네.”

    

일우에게는 그들이 일본어로 인사를 한 사실이 우리나라를 무시한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경쟁심 때문일까? 또래들의 행동에는 유난히 엄격해지는 일우였다.  

  




아이들의 흥미를 돋우는 법  

  

아이들에게 카메라를 주어 방송 놀이를 시키거나 관광가이드 역할 놀이를 하는 것도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된다. 단 카메라를 건네 줄 때는 반드시 목에 걸고 있을 것을 주문해야 한다. 안 그러면 고가의 카메라가 박살이 난 채 돌아오는 불행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특히, 가이드 역할 놀이를 하면 아이들 스스로 유물이나 유적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하므로, 관람에 집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원래는 방송 놀이를 위해서 액션 카메라도 별도로 준비해 가져 갔지만 아이들이 장난치다 박살 내는 바람에 중간중간 내 카메라를 건네주어 놀게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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