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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May 18. 2018

아빠, 아이들을 질투하다!

네르하- 그라나다

아빠, 아이들을 질투하다!     

네르하- 그라나다    

 

11살 일기

오늘 노래 부르는 아저씨에게 1유로를 드렸다. 아저씨가 내게 웃어줘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구두쇠 아빠가 웬일로 돈을 줬지?  

    

9살 일기

네르하를 떠나야 해 슬펐다. 슬픈 노래를 부르는 아저씨에게 1유로를 줬다.  


   



그라나다로 가는 버스시간은 오후 두 시였다.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 최대한 늦게 체크아웃을 해서 열두 시 무렵 호텔에서 나왔다. 우리끼리 투표에서 그동안 머물었던 숙소 중 랭킹 1위를 차지한 네르하 호텔을 떠나려니 무척 아쉬웠다. 아이들은 5일간 묵었던 객실의 침대나 배게 같은 비품들에게도 ‘잘 지내라’며 인사를 했다. 

     

 버스 시간까지 두 시간이나 남았기에 우리는 유럽의 발코니 광장에 앉아 거리 공연을 감상했다. 미국 가수 ‘에릭 클랩턴’이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 사고로 죽자 슬픔을 달래기 위해 만들었던 ‘티어즈 인 헤븐(Tears In Heaven)'이 광장 가득 구슬프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일우 또래로 보이는 금발의 여자아이가 또르르 달려가더니  가수의 앞에 놓인 바구니에 수줍게 동전을 놓았다. 그걸 본 일우와 혁우가 동전을 달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바로 거절했을 텐데 노래의 감동 때문인지 1유로씩을 손에 쥐어주었다. 내게는 그렇게 당당히 말하던 아이들은 막상 가수의 앞에 서자 부끄러운 듯 쭈뼛거렸다. 아이들이 용기 내어 바구니에 돈을 놓자 노래를 부르던 그가 가볍게 눈웃음을 지어주었다. 


광장 위의 사람들은 알폰소 12세 국왕 동상과 어깨동무하거나 그 옆 대포에 올라탄 채 한가로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마시며 공연을 즐기는 관광객들의 얼굴에는 휴양지 특유의 여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다시 또 볼 수 있을까 싶은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막상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눈앞의 풍경이 너무도 아쉽게 다가왔다.     

체크아웃을 마치고 광장에서 버스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중

 

아빠, 아이들을 질투하다.


“그라나다 가는 버스 여기서 타는 거 맞나요?”  

 "아... 예!"  

 

버스를 기다리는데 한국 아가씨 한 명이 우리에게 물었다. 항상 우리가 물으면 물었지 누군가 우리에게 묻는 일은 처음인지라 질문을 받고서는 잠시 놀랐었다. 그래서였을까? 아이들은 먹이를 발견한 물고기 떼 마냥 득달같이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응, 그라나다.”

“어? 우리 거기로 가는 길인데. 근데 왜 다시 그라나다로 가요?”

“응 짐을 맡기고 와서 짐 가지러 가야 해."

"다음은 어디로 갈 거예요?"

"론다로 가려고.”

“어? 우리도 론다 갔다 왔는데.” 

    

아일랜드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반년 정도 유럽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그녀는 아이들이 쉴 새 없이 말을 걸어 귀찮을 법한데도 귀찮은 기색 없이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버스에 타서도 아이들의 질문은 이어졌다. 

    

“영어는 잘하세요?”

“응. 그냥 여행 다닐 정도야.”

“울 아빠도 영어를 잘하긴 하는데 잘 안 써요.”

     

그녀가 나를 쳐다보길래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했다.  

    

“얘들아. 누나 피곤한 것 같은데 좀 쉬게 해 주면 어떨까?”

“아빠 우리만 친해지는 거 같으니까 질투하는 거죠?”  

   

별스럽지 않은 일우의 말에 순간 말이 막혔다.

     

“얘들아 미안하지만 누나 좀 눈 좀 붙일게.”

     

그녀가 양해를 구하고 나서야 아이들은 물러났다. 한동안 아이들은 장난감을 꺼내서 놀더니 금세 잠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도 되었다. 아이들은 대화를 할 수 있는 한국 사람이 그리웠던 거였다. 나 역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 일이 오래전 일이었다. 이곳 유럽에서 한 대부분의 대화는 필요에 의한 그것도 서툰 영어로 한 것이 전부였다. 아이들 이외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도 당연했다. 아이들의 마음은 분명 나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일우 말대로 나는 아이들을  질투를 한건 지도 몰랐다.

     

그라나다 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며칠 뒤 말라가로 타고 갈 버스를 바로 예약했다. 말라가에서 마드리드를 거쳐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기 때문이었다. 숙소가 있는 카르멘 광장으로 가기 위해 그라나다 대성당 방향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커다란 트렁크를 들고 버스를 탈 때는 아이들과 떨어지지 않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긴장해야 했다. 트렁크는 네르하에서 쉬면서 더욱 무거워져 있었다. 늘어난 대부분의 물건들은 아이들의 장난감 따위나 기념품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아이들이 올라탄 것을 확인한 후, 뒤따라 올라탔다. 버스에 승객들이 많아 트렁크를 움직이기가 매우 어려웠다. 또한, 각자 매고 있는 자신의 몸통만 한 크기의 배낭이 다른 사람에게 부딪히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 써야 했다.


 숙소는 ‘네스트 스타일 그라나다’라는 파리에서 묵었던 ‘이비스’ 같은 체인 형식의 저가 호텔이었다. 하지만, 직원의 친절함이나 숙소의 청결함, 와이파이의 속도 같은 서비스는 특급호텔에 못지않았다. 시내 중심에 있어 관광이나 교통 또한 매우 좋았다. 저녁거리를 사러 2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메르카도나’라는 마트로 향했다. 델 캄피오 광장 중앙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운 물줄기들이 낮 동안 뜨겁게 달구어진 그라나다의 공기를 적셔주고 있었다. ‘론다’와 ‘네르하’ 같이 조용한 소도시를 돌다가 다시 그라나다 같은 대도시로 나오니 그 활기참에 덩달아 흥분되는 느낌이었다. 광장에는 마침 만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종료시간이 가까웠는지 전시물들이 거의 철거 중이었다. 내일 와서 보기로 약속하며 아이들의 아쉬움을 달랬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는 아쉽게도 만화 축제가 종료 중이었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자 바깥은 벌써 어두워져 있었다. 알람브라 궁전이 위치한 북쪽 하늘에서 몇 개의 불빛들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아마도 알람브라 궁전을 밝히는 야간 조명인 듯했다. 드디어 내일 알람브라 궁전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알람브라 궁전은 하루 입장 인원이 제한되어 있어 예매를 하지 않은 경우 자칫 관람을 못할 위험이 있었다. 그런 이유로 네르하에서 쉬는 동안 몇 차례나 예매를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스마트 폰 접속 오류로 예매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내일 아침 일찍 현장에 도착해서 당일 표를 구매해야 했다. 불빛 뒤에 숨어있는 알람브라 궁전을 바라보며 우리의 만남이 성사될 수 있길 마음 모아 기도했다.      


델 캄피오 광장의 분수는 저녁에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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