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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Apr 22. 2023

의자가 나무처럼 쑥쑥 자랐으면 좋겠네.

고사리 커피에서



개발에 관한 논쟁으로 오랜 시간 사연 많던 비자림로를 지나는데 붉은 벽돌로 뒤덮인 낡은 창고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고사리 커피라는 이름만큼 특이한 외관의 카페였다.




귤피차와 에스프레소 커피가 조화롭게 만난 고사리 커피와 고사리 카페라떼, 누룽지 치즈케이크를 주문했다. 고사리커피는 고소한 커피 향과 상큼한 귤향이 섞인 독특한 맛이었고 누룽지 치즈케이크는 달콤한 치즈와 구수한 누룽지가 만난 묘한 맛이었다. 라떼는 다소 평범한 맛이었다.



테이블의 의자는 특이하게 한쪽에만 등받이가 있었다. 아내보다 먼저 들어온 나는 자연스럽게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았다. 먼저 온 커플들 역시 모두 남자들이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남자들은 모두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고 여자들은 모두 등받이 의자에 앉아 있는 게.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이제 시대가 바뀐 거예요. 권력이 남자에게서 여자로 넘어간 거죠.
고작 이런 걸로 권력이 바뀌었다고 하기엔 그렇고. 그냥 상대에 대한 배려인 거죠. 당신도 내가 무서워서 그 자리에 앉은 건 아니잖아요.
응. 그건 그렇기도 하지만...


나는 차마 아내에게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



고사리 옆에 놓여 있는 등받이 있는 의자
등받이 없는 의자


누군가 숲 속에 의자를 가져다 놓았네요.
그러겠죠? 의자 씨앗이 땅을 뚫고 자란 게 아니라면요.
지금 그걸 개그라고 말하는 거예요? 도대체 리액션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아니, 웃기려고 말한 건 아니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다음에 왔을 때는 의자의 키가 그를 둘러싼 다른 나무들처럼 한 뼘 더 커져 있기를 빌어 보았다.


부디 지금처럼
단단한 모습으로
 쑥쑥 자라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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