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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Nov 06. 2023

호텔 수영장에서

인도 소년과의 만남



보통 혼자 여행을 할 때는 일정을 빠듯하게 잡아 정신없이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뭐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본전 이상을 뽑아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지만 자칫 나 홀로 여행으로 인한 우울감이나 외로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여행아먹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나 홀로 여행임에도 처음부터 느슨한 일정을 잡았다. 더운 나라인 만큼 낮의 일정을 타이트하게 잡을 수 없는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왠지 방콕 방문이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방콕에 머무는 일주일 동안 도착하는 첫날을 제외하고는 계속 같은 호텔에 머물렀다. 덕분에 매일 아침은 거의 루틴한 생활을 했다. 아침 일곱 시 정도에 기상을 해서 조식을 챙겨 먹고 수영장에 가서 두어 시간 수영을 한 후 근처 마사지 샾에 가서 마사지를 받는 나름 바쁜 일정(?)을 왕궁 투어가 있었던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같이 수행했다.


"Teach me swiming^^"


여느날과 같이 하릴없는 물개처럼 수영장 끝에서 끝을 시계추처럼 왕복하고 있던 내게 웬 소년이 말을 걸었다. 소년 너머에는 그의 아빠로 보이는 남자가 수영장 밖 선베드에 앉아 있었다. 그가 내게 두 손을 모으며 부탁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영을 못하는 자신 대신 아들에게 수영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는 그의 마음이 같은 아빠로서 공감이 갔다.


"나도 수영을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좋겠어요?"


라는 머릿속 생각을 영어로 번역하다가 짧은 영어실력으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소년이 해맑은 얼굴로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결국 졸지에 수영 교사자리를 수락하고  나는 소년에게 자유형 영법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소년은 정말 용감하고 똑똑한 학생이었으나 가르치는 나는 전혀 그러지 못했다. 수영 강습을 보름 정도 받다가 강사의 고압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둔 나는 그 이후 유튜브를 보면서 독학을 했던 게 고작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나도 잘 모르는 자유형은 포기하고 소년에게 개헤엄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다행히도 소년 역시 개헤엄은  쉽게 따라 했다. 다만 아직 물을 두려워하는 까닭에 호흡이 편안하지는 않아 보였지만 그래도 물속에서의 직임이 자연스러운 게 제법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았다.


"Keep practicing. And you will be a good swimmer soon."


더 이상 소년에게 가르쳐 줄 게 없다고 판단한 나는 소년을 하산시키는 멘트를 남기고 수영장 밖으로 나왔다. 캘커타에서 컴퓨터 노트북이 아닌 진짜 노트북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소년의 아빠가 짧은 시간에 수영을 익힌 자신의 아들을 대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Your son is very brave and smart!"


그에게 엄지를 들며 말해주자 그가 내게 함박웃음을 보였다.

문득 오래전 아이들을 데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올랐을 때 만났던 사람 좋았던 프랑스 화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겨울에 순례길을 걷다니 당신과 아이들은 매우 용감해요."


그때 나도 그에게 이런 함박웃음을 지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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