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호 하이킹
어쩌다 보니, 올 상반기에 속초를 두 번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두 번 다 해변보다 호숫가를 더 걸었어요.
봄의 영랑호가 예뻤습니다.
벚꽃이 만개할 무렵이면 영랑호를 찾는 관광객들로 길이 꽉 막힌다던데,
벚꽃이 막 피기 시작했던 때도 예뻤고, 벚꽃이 다 진 후도 예뻤어요.
꽃이 지고 난 자리에 초록색 잎사귀가 빼곡해져서 그늘이 깊었죠.
벚꽃 시즌도 지나고, 마침 평일이었던 날, 호숫가는 한가했습니다.
관광객보다 산책을 나온 현지인들이 더 많은 것도 같았습니다.
도보로 한 시간 반쯤 걸리는 둘레길.
자전거를 빌려 신나게 달렸습니다.
아름다운 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기분이 얼마나 짜릿하던지요.
평소에도 자전거를 자주 타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달리는 건 쉽지 않아요.
관광객이 없는 요일이어서인지, 산책로와 함께 있는 도로 역시 한가했어요.
오랜만에 속이 다 뚫리는 것 같은 해방감을 만끽했습니다.
속도를 내어 달리기도 하고 ‘신난다, 너무 재밌다.’는 말을 연발하기도 하면서요.
자전거를 가르쳐 준 사람은 남의 편입니다.
처음에는 면허증이 없는 내게 운전을 배우라고 여러 차례 권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끔찍해서 끝내 나는 운전을 배우지 않았고, 운전에 대한 공포(정확히는 교통사고에 대한) 때문에라도 차를 운전할 생각이 없었어요.
남의 편이 운전을 자꾸 권한 이유는, 자신이 해야 하는 귀찮은 일, 가령 자동차 검사나, 수리, 교체 같은 일을 ‘집에서 노는’ 나에게 맡기고 싶어서가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역시나 본인이 해야 하는 귀찮은 일, 가까이에 사는 부모님을 차로 모시고 가야 할 자식으로서의 효도를 내게 떠넘기고 싶어서입니다. 운전을 배워 부모님이 볼일이 있을 때마다 모시고 다니라는 말을 내게 하는데, 이미 대리 효도 중이었던 나를 대리 기사 노릇까지 시키려 하는 남의 편에 대한 정나미와 함께 운전에 대한 정나미도 뚝 떨어져 버렸어요. 이유는 그렇지만, 지금도 운전을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은 전혀 없어요. 우리나라 대중교통이 훌륭하고 만족하니까요.
그런데, 자전거를 배운 것은 잘한 것 같아요. 한강 고수 부지에서 꽈당 꽈당 넘어져가며 배운 자전거. 워낙 운동신경도 없고 체육과목 싫어하고 겁이 많던 나는 두 바퀴 위에 넘어지지 않고 균형을 잡고 달린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습니다. 연습 끝에
마침내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자, 얼굴에 닿는 바람의 온도가 다르더군요.
운전을 배워볼까 살짝 생각했던 것은 자녀 셋을 양육하는 동안의 필요 때문이었어요. 자전거를 배우니, 아쉬운 대로 문화센터나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뒤에 태우고 다닐 수 있어서 좋았지요. 지금도 바쁘게 가야 할 일이 있을 때, 도보나 버스보다 훨씬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는 자전거를 애용하고 있고, 내 붕붕이를 사랑하고 있어요. 여러 차례 수리도 하고 녹이 슬었지만, 아직 더 달릴 수 있습니다.
폐쇄적이고 제한되고 좁은 사회에 머물렀던 나는 자전거를 타며 더 멀리 갈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자전거가 아니라 자동차를 탈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멀리 더 빠르게 갔을까 문득 생각하기도 해요. 그런 생각은 잠깐 머물다 사라지고, 이만큼 도달한 내게 충분히 만족합니다.
덕분에 이렇게 푸른 나무 그늘 아래를 달리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