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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희망은 독거 할머니

by 함지연

최근에 알게 된 사람의 집에 잠깐 들를 일이 있었다. 70대 초반의 여성인 그녀는 부산에서 올라와 오피스텔에 세를 얻어 지내고 있었다.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지방에 있는 집에서 다니기 힘드니 집을 얻었다고 했다. 그녀는 새로 얻은 집에서 일 년이나 이 년쯤 머물며 치료에 전념할 예정이다.


임시로 머무는 숙소이니 살림은 단출했다. 작은 냉장고 문에는 손글씨로 암에 좋은 음식과 좋지 않은 음식을 적은 종이를 몇 장 붙여두었다. 조립식 행거와 싱글 침대를 새것으로 장만했다. 일반적으로 1인 가구가 거주하는 공간에 있을 법한 사물들 사이에 자개장이 눈에 띄었다.


곱고 선한 인상이며 목소리도 차분하고 낮아서 처음 본 날 시를 쓰는 분 같다고 했었다. 레이스가 달린 모자를 쓰고, 역시 레이스로 짠 카디건을 원피스 위에 걸친 모습이었는데 그런 그녀에게 어쩐지 어울리는 사물이었다.


요즘은 보기 드문 자개장은 오래되어 보였지만, 험하게 쓴 흔적 없이 깨끗했고 무늬는 화려하면서 우아했다. 다른 가구들은 임시로 사용하기 위해 주문한 새것이지만, 자개장만큼은 먼 곳에 있는 그녀의 방에서 실어온 것이었다. 어떤 이야기나 애정이 있기에 고작 1,2년 동안 사는 집까지 따라왔을까.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살기 시작한 집에서 그 자녀들이 중년의 나이가 되도록 살았다고 했다. 그녀가 오랜 세월 함께 했던 집에서 가져온 반짝이는 물건은 낯선 방에 혼자 머무는 동안, 편안함을 주는 존재 같았다.


배우자는 부산의 본집에 머무르며 항암치료를 위해 병원을 가는 일정이 생길 때마다 올라와서 며칠 지내다 간다고 했다. 내가 갔던 날이 마침 항암치료를 위해 입원하는 전날이어서 할아버지가 함께 계셨다. 초면인 나와 있는 자리가 불편하셨는지 인사를 나눈 뒤. 현관 옆에 딸린 작은 드레스룸으로 들어가셨다.


자개장이 있는 방에서 대화를 이어가다 문득 혼자 지내니 좋으시지 않냐 작게 물으니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할아버지에게 안 들리게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속삭였다. 몇 달을 그렇게 살았더니, 이제 그 방의 주인은 그녀였고, 그녀의 배우자는 손님이었다. 그곳에 할아버지의 사물들은 없었으니까. 화장실에 칫솔이나 면도기 정도가 있으려나.


그녀는 혼자 있으니 너무 편하고 자유롭다고 했다. 70년 넘게 살았지만 혼자 살아보는 건 처음이라고 했다.

항상 가족과 부대끼며 살아왔겠지. 그러다 갑자기 혼자 있을 기회가 온 것이겠지.

그녀는 혼자만의 공간으로 이사를 오고 낯선 동네의 낯선 골목과 친해지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반갑게도 신선한 생선과 해산물을 파는 슈퍼마켓을 발견했다며 좋아했다. 오피스텔 가까이 있는 등산로를 걸었는데 좋더라며 매일 산책을 해야겠다고도 했다.

그녀는 70년 만의 독거를 즐기는 듯 보였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걷는다. 병에 걸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처음 경험하는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은 부러웠다.


지금 그녀가 보내는 일상은 내가 바라는 미래이다. 혼자 사는 삶. 혼자만의 공간에서 나이 들어가는 것. 물론 그는 다시 본집으로 갈 것이며 혼자 지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의식적으로 또는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로도 ‘혼자 살고 싶어!’라는 말을 얼마나 자주 했던지, 언젠가는 딸이 엄마는 콕 찍어서 독거노인이 꿈이잖아라고 했다. 그래서야 정확하게 깨달았다. 그렇지. 내 장래희망은 독거 할머니였지.


60대가 코앞에 닥친 나는 '독거'를 한 경험이 전무하다. '독거'는커녕 '독방'을 써보지도 못했다. 대학 시절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시작하던 친구들은 결혼으로 가정을 이루기 전까지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서울토박이이며 결혼 전 자녀가 독립하는 경우가 드물었던 시대였기에 결혼 전에도 결혼 후에도 가족과 함께였다.


항상 가족들과 복닥복닥 부딪히고 갈등하고 등 돌리고 둥글게 둘러앉아 밥을 먹고 한 이불을 덮고 낮잠을 잤다.


그러는 동안, 자녀들의 꿈이 내 꿈이고, 자녀들의 미래가 내 미래인 듯 뒤섞인 채 지냈다. 이제 성인이 된 자녀들과 여전히 뿌리가 서로 엉킨 채 같이 나이 들어가는 미래를 나는 원치 않는다. 적당히 떨어진 거리를 두고 서로의 안부와 안녕을 살피며 나만의 공간에서 살아보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사회적인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한 후에는, 무겁게 짊어지고 살아온 역할은 내려놓고 그냥 나로 살아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것, 내 혀가 좋아하는 맛, 내 눈에 아름다운 취향,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혼자 지내며 그동안 남을 돌보느라 돌보지 못한 나를 챙기는 시간을 갖고 싶다.

나는 ‘독거’하고 싶다.


누군가는 그런 삶을 원치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런 나를 이기적이라고 할 것이다. 사람은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가족이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지고 볶으며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가정 안에서 마땅히 해야 할 여자의 역할을 하며 늙어가라고 내 생각이 틀렸다고 할 것이다.


독거하겠다는 것이지 관계를 끊고 은둔을 하거나 고립하겠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지금처럼 죽는 날까지 사회적인 관계를 이어 나갈 것이다. 오히려 새로운 관계 맺는 것을 적극적으로 즐기고, 오래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만 나와 관계 맺은 그들과 일정 시간을 보낸 후에, 내 집으로 돌아와 혼자 있겠다는 것뿐이다.


인생의 어느 한 시절이라도 혼자 살아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만을 위해 살림을 꾸려보는 시절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그 시절이 청년기일 때도, 중년일 때도 있겠지. 그런데 나는 그 시기를 지나는 동안, 기회가 없었다. 아직 독립하지 못한 자녀가 둘이다. 내가 혼자 살아볼 기회가 당장 올 가능성을 희박하다.

아들 딸들아, 독립을 하든 결혼을 하든 서둘러 주기 바란다. 장래희망은 독거 할머니지만, 그 꿈이 빨리 이루어져서 독거 아줌마가 되면 더더욱 선물 같을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설레는 걸 보니 내게 지금 고독이 필요한 모양이다.

고독해지고 싶다.

독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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