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직접 고민하고 결정하고 마무리까지 해야 했다. 급기야 12년째 계속해온 요가수업까지 중단하고 일에 몰두했다.
우연찮게 책을 출간하게 되었는데, 노트북 앞에 앉아 모니터를 하루종일 들여다 보고 머리를 계속 굴려야 하는 일이다 보니 성과와 반대로 부작용도 있었다.
첫 번째는 꾸준히 했던 운동을 중단하고 책상 앞에만 앉아있으니, 몸의 근육이, 특히 하체의 근육이 감소하는 게 느껴졌다. 중년 이후의 몸은, 근육이 붙기는 어렵고 그나마 있던 근육도 급격히 감소하기 쉽다. 근력운동의 중요성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두 번째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머리 굴리는 데 소진하고 나면 단 음식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진다.
책을 만드는 동안, 나는 빵과 과자와 초콜릿과 콜라와 믹스커피에 의존했고, 당연하게 체중이 늘었다.
정신없이 달리던 일을 마무리할 무렵, 머리를 식힐 겸 원데이 클래스를 신청했다. 사부작사부작 무언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었다. 머리 말고 손을 쓰는 일을 하고 싶었다. 시간이 맞는 수업이 한 개 있었는데,
전통매듭법으로 팔찌 만들기.
사실 가장 취약한 부분이고 서툴다. 실제로 클래스에 참석한 수강생들 중에서 가장 못해서
강사님의 손을 제일 많이 빌린 하위권 1인이고, 쩔쩔매고 징징거리며 겨우 완성은 했지만, 더는 전통매듭법을 배울 마음이 없다. 머리 말고 손 쓰는 일을 하겠다며 갔는데, 아뿔사. 매듭만드는 것도 머리가 필요했다.
120분 수업.
그리고 아줌마들의 특기는 이 짧은 시간도 놓치지 않는다.
처음 보는 사이여도 나란히 앉아 수업을 하고 실습을 하다 보면 저절로 친해지는 마법.
가위를 건네주고 매듭을 골라주고 어울리는 색의 조화에 대해 의견을 교환하며 우연히 빈자리에 앉아
짝꿍이 된 이들은 왜인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아줌마들의 세계.
나와 내 짝꿍이 그러했다.
물론 내 앞에 나란히 앉은 두 여자도 그랬다.
시작할 때 각자 휴대폰만 들여다보던 그녀들은
끝날 무렵 더없이 다정해진다. 머리를 맞대로
매듭법을 서로 알려주며 팔찌를 완성해 간다.
서로의 손목에 팔찌를 채워주고 예쁘다고 잘했다고 손뼉을 친다.
나와 내 짝꿍은 매듭을 차례차례 완성하며 수업에 대한 대화를 이어가다 갑자기 다른 수업에 대한 정보, 다른 취미에 대한 정보를 주제로 대화가 이어졌다. 언제 같이 재료들을 구입하러 동대문종합시장에 가자는 말까지 나왔다. 심지어 각자 휴대폰 갤러리에 있는 결과물들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녀는 내 갤러리에 있는 비즈 책갈피를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 했다. 그 표정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아, 진짜 주고 싶다."
그런 말이 절로 나왔다. 정말 주고 싶어요. 그러자 그녀는 언제 또 센터에 오느냐 물었다. 받으러 오겠다며.
나는 목요일마다 수업을 들으러 오니, 시간이 맞으면 보자고 했다. 내가 출간한 책도 선물하겠다고 했다. 수업이 끝나 강의실을 떠나기 전,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리고 다음 주 수요일 저녁에 그녀는 문자를 보냈다. 내일 만날 수 있느냐고. 나는 그녀에게 선물할 책과 비즈 책갈피를 챙겼다. 센터 내 카페에서 만난 우리는
공통주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처음 보는 사이의 첫 만남이 그러하듯 자연스럽게 호구조사까지 마쳤다. 나이까지 공개하고 보니,
나보다 한 살이 어렸다. 위아래로 3살까지는
친구 맞죠?
50대의 나이가, 특히나 여자로서의 삶이 다 비슷한가. 상황이 같은 것도 아니고 삶의 모양도 사는 동네도 다르지만, 인생의 반을 살고 이제 절반의 삶이 남은 즈음의 마음, 혼란, 변화에 대한 갈망은 왜 이렇게 비슷할까.
그래서 이야기가 깊어지다 보면,
어머, 너도 그래? 나도 그런 마음이야.
서로에게 공감을 하게 된다.
50대의 여자들은 자꾸만 슬퍼지고, 혼자 있고 싶고
나를 찾고 싶어 한다.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들은 취미나 아파트, 주식, 자녀의 문제를 거쳐 결국 '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는 마음을 드러난다. 2시간 원데이수업을 함께 했던 우리도 그랬다. 카페에 마주 앉아 작은 선물을 주고받고(하위권인 나와 달리 그녀는 더 배워보고 싶은 마음이 컸고, 재료를 구입한 후, 집에서 복습을 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팔찌를 한 개 더 만들어왔다) 쉴 새 없이 떠드는
중년의 두 여자가 만난 지 2 시간 된 사이라고
누가 알겠나.
선생님.
(우리는 아직 서로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센터에서는 강사도 수강생도 서로 선생님이라고 호칭한다)
그녀가 갑자기 선생님! 하고 불렀다. 그러더니
7월에 한 달 살기를 하러 여행을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꼭 해보고 싶었던 꿈이라고 했다.
영국에서 시작해 스위스, 이탈리아까지 여행을 한다는 이야기 끝에,
선생님, 뭐 갖고 싶어요. 내가 선물 사 올게요.
갑자기 갖고 싶은 것을 묻는 바람에 선뜻 대답은 못했지만, 그 마음은 고마웠다.
책에 저자의 이름이 쓰여 있으니 그녀는 내 이름을 안다. 아직 그녀의 이름을 모르는 나는 일어나며 물었다.
선생님, 우리 친구인데, 나는 친구 이름도 아직 몰라요.
그녀는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어쩐지 어울리는 이름이다. 집으로 돌아와 지난주에 '전통매듭'이라고 저장했던 번호를 그녀의 예쁜 이름으로 변경했다.
이럴 때, 나는 내가 정말 아줌마구나 느낀다. 사람에 대해 스스럼이 없어지는 경험, 2시간이면
여행지에서 선물을 고를 친구가 생기는 경험.
낯이 두꺼워지는 건가. 뻔뻔해지는 건가.
60이 다 되어서도 새 친구가 내 인생으로 찾아온다. 70대에도 80대에도 내 옆에는 그 순간 마음이 맞고 스스럼없고 다정한 친구가 있을 것이다. 소녀들처럼 작은 일에도 손뼉 치며 함께 웃는 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내일의 독거할머니는 외롭지 않을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