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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가지하다

by 함지연

나는 비위가 상당히 약하다.

그래서 식당에 갔을 때 화장실과 가까이에 있는

테이블에 앉지 못한다. 가깝지 않더라도

내가 앉은자리가 화장실 뷰라면 숟가락을 들기도 전에 식욕을 잃는다.

반드시 등을 돌려서 화장실 문이나 화장실 표지판이 보이지 않도록 외면해야 한다.


단골 식당 밥이 아무리 맛있어도 화장실과 연관된 비위가 상하는 상황과 마주하면 다시는 가지 않는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버스를 타고 이동 중에 몇 번 그 식당 앞을 지나친 적이 있는데, 차창 밖으로 보면서 이전의 충격적인 장면이 저절로 떠올랐다. 더 구체적으로 고백하자면, 그 식당의 주메뉴는 내가 즐기던 음식이었는데, 그 음식을 먹을 때의 즐거움조차 아예 잃어버려서 더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여행지의 숙소 안에서 뒹굴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식당과 화장실의 예민한 관계에 대한 나의 길고 긴 에피소드를 다 듣고 나서 너는 말한다.


가지가지하네.


나와 반대로 너는 비위가 약하지 않다. 약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강하다.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너에게는 퍽 다행한 일이다. 어르신들의 배설물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 비위까지 약했더라면 곤혹스러웠을 것이다. 너는 어제도 며칠째 변을 보지 못한 어르신의 용변처리를 도왔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비위 약한 나를 배려해서 마치 모자이크 처리라도 하듯 단어를 선택해서 에둘러 말했으나, 나는 모자이크 처리한 단어를 집요하게 뚫고 식욕을 잃게 하는 이미지를 연상시키고 만다. 다행히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온 다음이었기에 나한테 등짝을 맞지는 않았다.


잠잘 준비를 하며 기초화장품을 챙겨 오지 않은 너는 내게 빌려달라고 했다. 세럼과 아이크림과 수분크림을 차례대로 덜어주며 바르라고 했다. 건성피부인 나는 겨울에는 특히 보습을 신경 쓰는 편이기에 저녁에 바르는 기초제품은 유분기가 있고 당연히 사용감이 무겁다. 너는 내가 덜어준 세럼을 손바닥으로 비비다가 인상을 찌푸린다.

너는 끈적이거나 미끌거리는 것을 싫어한다. 싫어하는 정도가 꽤 지나칠 정도여서 예민하게 보인다. 털이 아주 많은 벌레라도 닿은 듯 화들짝 놀라는 너를 보며, 무딘 줄 알았는데 예민하기는, 하고 나도 투덜거린다.

너는 머리를 감고 헤어스타일링 제품을 바를 때 반드시 위생장갑을 착용한다고 말한다. 그게 여의치 않을 때 너는 차분하게 정돈된 머릿결을 포기하고 부스스함을 선택한다.


그러니 오일 성분이 포함된 진득한 세럼을 손바닥으로 비벼 얼굴에 바를 때 너는 어땠을까. 오만상을 찌푸리며 얼굴에 화장품을 펴 바르는 너를 보며 나는 복수했다. 조금 전 너의 대사를 떠올리며 통쾌하게 한 방을 날린다.


너도 가지가지한다.


우리는 누구나 가지가지한다.

물론 대체적으로는 무던하고 무디다. 그래야 좀 덜 힘들게 살 수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예민하고 민감하고 그래서 발끈한다. 사람마다 각각 참지 못하고 견디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그냥 넘기지 못하는 부분이 많고 어떤 사람에게는 적다.


사실 처음 알게 된 시기에는 너에게서 예민한 부분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런 사람이 세상에 실재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무던해서 신기했다. 너에 비해 나는 예민 덩어리 그 자체 같았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다가 아는 사람이 된 지가 벌써 5년이 훌쩍 지났다. 사회에서 만난 우정이 5년째 유지되고 있다는 것은 꽤 긴 시간이기도 하다. 자주 전화하고 자주 만나고 자주 여행을 다녔으니 쌓인 시간은 더 많게 느껴진다. 그러면서 점점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진다.


새롭게 발견한 어떤 앎은 새삼스럽고 놀랍기도 하다. 내가 너에 대해 알게 되는 새로움 중에는 나 못지않게 예민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너는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잠에 관련해서 예민한 나에 비해 너는 특히나 음식에 까다로운 부분이 많아서 너와 무얼 먹으러 갈 때마다 나는 사실 고민이 많다.


말하자면, 너는 나와 마찬가지로 가지가지한다. 우리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실 가지가지한다. 그런데 그 가지가지하는 부분들이 거슬리지 않고 어이없어하는 정도 내지는 그냥 웃고 넘기는 정도 내지는 재미있는 일화 정도로 넘길 수 있는 한 우정은 지속될 것이다. 가지가지하는 나와 가지가지하는 네가 침대에 엎드려 배가 아프도록 웃는 여행지에서의 밤이 지나간다.


덧붙이는 일화.


동해역에 내려 바다를 따라 묵호까지 걸었던 여행.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를 타기 전,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들어갔다. 생선구이를 시켰는데, 시간이 걸리는 메뉴였고 창가 자리에 앉아

식당 문 앞에 늘어놓은 화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노란 열매들이 매달린 식물을 가리키며 너는 저게 뭘까, 궁금해했다. 그러자 탁자 위에 반찬그릇을 늘어놓던 식당 주인이 무심히 알려주었다.

가지예요.

저게 가지라고요?

우리는

'가지'라는 단어에 호들갑스럽게 반응했다.

식당주인은 우리가 밤새 '가지'얘기를 했던 건 모르니 왜 저래, 아줌마들이 가지 처음 보나 하고 뜨악했을 수도 있겠다.

뭉툭하고 작고 노란 저게? 식당에서 키우는 식물은 우리가 반찬으로 먹는 보라색의 식용 가지가 아니라 관상용 가지였다.


여행 내내 가지 타령을 했는데, 마지막까지 가지를 보고 돌아오다니, 무슨 이런 가지가지한 여행이 다 있나.

(아이패드로 가지를 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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