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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 ttuk Oct 15. 2024

달리기에도 권태기가 존재합니다.


권태기라 함은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을 말한다. 관계에도, 일에도, 심지어는 운동에도 권태기는 찾아오기 마련이다. 매번 하기 싫다면 진작에 포기했겠지만 잊을만하면, 방심할 때쯤, 스멀스멀 올라온다.


달리기는 야외에서 하는 운동인지라 날씨나 변수요인들이 많으므로, 뛰지 않을 이유를 열거하다 보면 끝이 없다. 여름엔 더워서 힘들고, 겨울엔 추워서 힘들고 그나마 가을•봄이 유일한 대안인데 봄은 미세먼지로, 가을은 왠지 쓸쓸한 마음에 의욕이 생기지 않는 것 같다며 사계절마다 저마다의 이유를 붙여댄다. 어디까지나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 진정한 러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뛴다. 비겁하게 환경 탓을 하지 않는다.


오늘은 비가 와서, 오늘은 해가 너무 뜨거워서, 습도가 너무 높아서, 갖가지 이유를 대다 보면 뛰지 않을 이유는 끝이 없기 마련이다. 게다가 컨디션까지 좋지 않으면 뛸 수 있는 날이 없다. 그렇게 런태기가 오면 러닝에 대한 흥미를 잃고, 러닝을 하고자 하는 명분조차 사라진다.


햇수로는 5년 차에 접어 들어가는데 누적된 기간과 함께 실력은 비례하지 않을 때, 체중이 늘어나 발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몸이 버겁게 느껴질 때면, 게으르고 나태해진 것 같아 스스로를 자책하게 된다. 그럴 때는 뛰지 않고 걸어도 되는 것을, 제대로 뛰지 않을 거면 아예 안 뛰는만 못하다고 생각하며 자포자기해버리고 만다.


달리기를 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니고, 나름의 목표가 있는데 좀처럼 따라주지 않는 실력을 보고 있노라면 답답할 따름이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며, 어제보다 더 나아진 컨디션으로 만족했던 달리기가 언젠가부터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운동으로 변질 돼버렸다. 비교로부터 자유로운 종목이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서부터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곳곳에서는 주변 러너들의 소식들은 계속 들려온다. 누가 대회에서 pb(personal best의 약자로 개인 최고 기록을 말한다)를 달성했고, sns에 올라오는 기록들은 괜히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비교의식에서 오는 자괴감이 꾸준히 하고자 하는 마음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무엇보다 1년 전부터 벼르고 있던 대회를 컨디션 난조로 인해 참여하지 못했을 때의 허무함은 꽤나 후유증이 크다. 몇 주 전부터 장거리 훈련과 식단, 대회 때 입을 옷들 등 하나씩 준비했는데, 컨디션 관리에 실패해 체중까지 늘어났을 때는 공든 탑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런태기를 극복하는 방법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평소 뛰던 코스인 집 근처를 벗어나 한강변을 따라 뛰거나, 색다른 코스를 찾아다닌다. 먼 길을 나온 만큼 바리바리 싸든 짐을 근처에 맡겨두고, 평소 찜해두었던 곳들과 추천받은 코스들을 하나씩 그려나간다.


콧바람도 쐴 겸 여행을 다녀올 때면, 여행지 근처에 뛸만한 러닝코스를 미리 알아보고 러닝복과 러닝화를 같이 챙겨 여행계획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푸르른 녹음과 함께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상쾌함을 느낄 때면 반복되는 일상에 신선함이 채워진다.


비슷한 루틴으로 뛰다 보면 언제든 권태기가 언제든 찾아올 수 있기에 코스를 바꾸거나, 장비를 사거나, 동료들과 같이 뛰는 등 저마다의 동력포인트를 찾아가며 조금이나마 권태로움에서 벗어나본다.


힘든 나날 속에 기쁜 날이 찾아오면 그 기쁨이 더욱 크게 느껴지듯이, 긴 어둠 속의 권태기 터널을 지나 빛을 보는 날이 찾아오면, 그간 묵혀있던 체증들이 쑤욱 씻겨 내려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이 맑아지고 시야가 탁 트이면서, 비로소 내가 온전히 살아있음을 느낀다.


비단 러닝뿐만이 아니다. 오랫동안 목표했던 것을 목전에 두고 멘탈이 흔들릴 때면, 잠시 환기를 시켜주며 초심을 다잡아 본다. 작심 이틀, 작심 삼일이어도 괜찮다. 다시 일어서는데 까지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그 기간을 묵묵히 견뎌본다. 어느샌가 주로(走路)에서 러너스하이를 느끼며 가볍게 뛰고 있을 나를 상상해 보며!





p.s: 달리기뿐만 아니라 일상 속에서도 권태기가 같이 찾아왔나 봐요.. 극심한 무기력에 너무 힘든 나날을 보내느라 연재가 좀처럼 더뎠습니다.. 남은 회차도 부지런히 써보겠습니다! 모쪼록 다들 몸 마음 건강 잘 챙기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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