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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 ttuk Oct 29. 2024

살갗을 파고드는 강추위 속에서



겨울에 접어들면서 짧았던 옷차림이 길어지고 바람막이, 패딩조끼, 외투까지 점점 무거워진다. 하지만 러너에게는 가벼움이 생명이기에 두꺼운 외투보다는, 얇은 옷을 여러 겹 껴입는 걸 선택한다. 열이 오르며 땀이 나기 시작하면 하나씩 벗어주면 된다.


눈이 오고 나서 도로가 얼면 군데군데 블랙아이스가 생긴다. 볕이 들지 않는 곳은 잘 보이지 않아서 미끄러지기 십상이다. 그럴 땐 비교적 안전한 트랙을 선택한다. 원을 그리며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뛰기 때문에 특정구간만 조심해서 지나가면 된다. 어릴 적에는 쌓인 눈의 키만큼 설렘도 같이 커져갔는데, 어른이 되니 번거로운 존재가 돼버렸다.


살을 에는 듯한 영하권의 날씨에는 최소 옷을 3겹을 껴입는다. 더불어 귀도리와 장갑도 필수. 바람이 새어 들어올 곳 없이 완전 무장을 하고 나간다. 3km 정도 지났을까 싶을 때, 어느새 몸이 후끈후끈 달아오르며 땀이 나기 시작한다. 허물을 벗듯, 가장 위에 입고 있는 재킷을 벗어던진다. 몇 바퀴 더 뛰고 귀도리와 장갑도 마저 벗는다. 그렇게 애벌레가 껍질 벗듯이 하나씩 벗으며 몸을 최대한 가볍게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갑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답답해서 벗자니 금세 손등이 시큰시큰 해진다. 장갑을 미처 못챙긴 날은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주먹을 꽉 쥔 채 따뜻한 입김으로 후후-! 불어주기도 한다. 벗은 장갑을 주머니에 넣는 것도 다 짐이기에, 체온보호만 할 수 있을 정도의 얇은 장갑이 편리하다. 갈수록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서 변수가 많이 생기니 이래저래 품이 많이 든다. 정작 운동화만 있으면 별다른 장비가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한 운동인데 말이다. 아무튼 러닝은 최대한 가볍게 하는 게 장땡이다.


다 뛰고 나니 입김과 함께 아지랑이 마냥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열이 방출되면서 옷을 뚫고 나오는 모습은 마치 구름을 탄 산신령을 방불케 한다. 혼이 빠져나가듯 모락모락 나는 김은 저 멀리서도 보일 정도로 강렬하게 후광이 비친다. 마스크 위로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서 어느새 앞머리까지 축축하게 젖는다. 어느새 집에 오면 젖은 머리카락이 고드름처럼 얼어있다. 꽤나 웃긴 풍경이다. 옷 속으로는 땀으로 흥건하지만 정작 맨살이 드러난 부위는 새빨갛게 텄다. 안과 밖이 이토록 다르니 열탕과 냉탕을 오가는 느낌이다.




가끔은 크루원들과 다 뛰고나서, 늘 가던 카페에서 따뜻한 차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몸을 녹이기도 한다. 겨울러닝이 이래저래 챙겨야할 것도 많고 추위를 뚫고 나오기가 힘들지만, 뛰고 나서의 개운함과 따스한 음료를 마시며 온기를 나누다보면 행복은 덤으로 찾아온다.


봄 가을에 열리는 마라톤대회를 기준으로 여름에는 혹서기, 겨울에는 혹한기 훈련이라고들 하는데 그래도 더위에 무척이나 취약한 나로선 혹서기보다는 혹한기가 괜찮다고 생각하며 이번 겨울도 가열차게 달려보고자 한다. 한껏 웅크려 있던 가슴과 어깨를 쫘악 펴주고 몸을 예열시켜주면서 나갈 채비를 마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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