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와 나 9
강아지와 둘이 산다고 하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혼자서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강아지에게도 사람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우리를 걱정해 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런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과 정성과 돈을 들여 강아지를 보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버겁게 느껴질 때 반려동물을 파양하거나 유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려인에게 깊이 의지하는 강아지에게는 세상을 잃어버리는 것과 다름 없는 불행이다. 이런 불행은 되도록 일어나서는 안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불행이 1인 가구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쉽게 들였다가 버거움을 감당하지 못하고 강아지를 쉽게 버린다는 것이다. 혼자서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인 나는 이런 생각이 1인 가구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곱지 않은 시선에서 비롯한 오해라고 생각한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책임감이 없다는 오해를 받는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서 사회적 책임이나 인륜을 외면하고 가족을 이루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오해 말이다. 출산율이 감소하여 국가가 인구 절멸을 향해 나아가는 이 중차대한 시기에 재생산을 할 생각이 없다는 것 또한 그들이 이기적이라고 지적받는 이유 중 하다. 그래서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고 책임감 없는 사람들은 반려동물을 키우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그들 중 다수는 일방적으로 강요된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뿐이지 손익울 따져 자기 편한대로만 살자는 것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내 주변에 있는 1인 가구 중 많은 수가 누구보다도 자기의 반려동물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책임감 있게 돌보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이 결혼을 하거나 이민을 가가거 그밖에 인생의 큰 변화가 생겨 동물을 버릴 거라는 생각은 그들의 삶이 임시적이고 불안정하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면 혹은 철이 들면 사회가 정한 바른 길-그러니까 결혼을 한다거나-을 갈 것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희망사항이다. 1인 가구는 현재 전체 가구 중 30% 가량을 차지하는 다수의 가족으로 그 자체로 완전한 삶의 형태이다. 1인 가구의 비율은 10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하였으며 앞으로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현실에서 사회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삶이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것만으로 증명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까. 이미 많은 수의 1인 가구 반려인들이 자신과 반려동물에게 또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책임감 있게 살아가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은 강아지를 방치하는 시간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반려인이 출근을 하면 강아지는 하루 종일 혼자 집에서 반려인만 기다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반려동물이 외로움을 느낀다는 것에 마음 아파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출퇴근 전후로 산책을 하고 주말에는 반려동물과 충분히 시간을 보낸다. 여유가 있다면 혹은 상황에 따라서는 강아지 유치원 같은 돌봄시설이나 펫시터 같은 돌봄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돌봄서비스를 중개하는 플랫폼도 생겨났고 많은 반려인들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방치되어 하루 종일 반려인만을 기다리는 반려동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를 돌보는 것이 1인 가구가 아니라 맞벌이를 하는 부부라면,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우는 가정이라면 상황이 달라질까. 반려동물이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어쩌면 반려인이 혼자 살기 때문이 아니라 노동시간이 너무 길고 임금이 너무 적기 때문은, 그래서 일을 하는 동시에 다른 존재를 돌보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은 아닐까.
마지막으로 혼자서 강아지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나 돌봄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한 사람들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삶의 모습을 강아지에게 이입해서 생겨난 오해라고 생각한다. 그 이상적인 삶의 다른 이름은 정상가족이다. 부모와 한 명 또는 두 명의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의 형태 말이다. 이러한 정상(!)가족 속에서만 돌봄과 사랑이 온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정상가족 중심주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형태로 가족이 구성되었다고 해서 사랑과 안정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구성원 한 사람(대부분 엄마)에게 돌봄과 희생이 쏠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상가족은 절대적으로 정상이고 이상적인 형태가 아니라 지극히 한 시대에 보편적이었던 가족의 형태이다.
게다가 강아지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주로 돌보는 한 사람이다. 강아지는 다수의 가족과 함께 살더라도 각자와 개별적인 관계를 맺는다. 가족 중 특정한 사람을 특별히 따르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흔히들 서열을 정해서 자신보다 높은 서열의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밖의 가족 구성원들은 자신이 무시당한다고 느끼기도 한다. 강아지에게 그 사람은 특별한 애착관계가 있는 주양육자이다. 대부분의 경우 먹이를 주고 산책을 나가는 등 자신을 돌보는 사람을 의미한다. 어차피 한 사람에게 쏠린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면 혼자 강아지를 돌보는 것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은 어패가 있는 말 아닐까.
이러한 선입견들은 혼자서도 반려동물과 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할 뿐 아니라 우리가 잘 살아가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하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걱정의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면 심리적으로 위축이 된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계속 되짚게 되고 반려동물이 아프거나 그밖에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상황을 만나게 되더라도 좋은 방법을 찾는 데 제약이 되기도 한다.
물론 우려를 뒷받침하는 일부의 사례도 있을 것이다. 혼자서 반려동물을 돌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돌봄을 대신하거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몸이 아프거나 긴 외출을 해야 할 일이 생길 때 그렇다. 나도 얼마 전 직장동료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일이 있어서 자가진단 키트를 구매해서 테스트를 해 본 적이 있다. 한 줄의 선이 나오기까지 수많은 생각을 했는데 그중 가장 크게 걱정된 것은 ‘내가 만약 자가격리를 하게 된다면 해리 산책은 어떻게 하지?’였다. (결과는 다행히 음성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움은 대부분 원가족이나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친구 혹은 이웃 등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거나 돌봄서비스가 확대되면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 곤란하고 어려운 상황을 만난다고 해서 혼자 사는 모두가 반려동물을 파양 하거나 유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혼자 살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원래부터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짜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또 반려동물에게 친화적인 사회라면 누구는 반려견을 키워서는 안 된다고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자신이 선택한 삶에 책임을 지고 최대한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사회가 아닐까. 그런 사회에서라면 혼자 사는 사람도 얼마든지 강아지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