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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주 Apr 22. 2022

시골 강아지는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해리와 나 22


외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인 동네 주변을 산책할 때면 어렵지 않게 다른 강아지들을 마주치게 된다. 강아지와 함께 사는 사람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길에서 마주치는 강아지들에게도 관심이 가고, 그때그때 마주친 강아지의 모습이나 행동들을 유심히 지켜보고 특이한 것이 있으면 기록을 남기게 된다. 그동안 우리가 산책길에 마주치는 강아지를 반려인과 산책을 나온 반려견,  마당이나 농장을 지키는 마당개, 그리고 반려인이나 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떠돌이개, 이렇게  부류로 나누어 정리해 보았다.

해안산책로에서 마주치는 강아지들은 대부분 반려견이다. 반려견들은 목줄을 하고 반려인과 함께 걷고 있다. 간혹 가다가 한적한 시골길이라고 목줄을 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보호자들도 있지만 다행히도 그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시골이라고 해서 빠르게 달리는 차나 돌발 상황을 만나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반려견의 안전을 위해서는 집 밖을 나올 때는 꼭 목줄을 하는 것이 좋다. 길에서 만나는 반려견들은 참 다양하다. 크기와 견종, 털 색깔과 성격 모두 제각각이다.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덩치 큰 해리를 경계하는데 그래서 멀리서 강아지가 보이면 최대한 마주치지 않게 피하거나 돌아서 간다.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경우에는 해리에게 기다리게 하는데 예민한 강아지들은 가까이 다가가지도 않는데 지례 겁을 먹고 높은 소리로 짖어댄다. 그래도 아직까지 큰 다툼이 있었던 적은 없다.

정기적으로 마주치는 강아지도 있는데 마을 입구에 사는 바둑이다. 바둑이는 노부부와 함께 사는데 아침저녁으로 꼭 세 식구가 함께 산책을 나온다. 할아버지와 바둑이가 먼저 걷고 할머니는 좀 떨어져 걷는다. 무심한 듯 함께하는 산책 길이 참 따스하게 느껴진다. 어르신들에게 인사를 하면 꼭 강아지가 얌전하다고 칭찬을 하신다. 강아지들은 아직 인사를 나누는 것은 아니고 거리를 두고 스쳐 지나간 다음 서로의 냄새를 확인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있다.


마을 안에서는 반려견보다는 마당개를 더 자주 마주친다. 마당개들은 집 마당이나 농장에서 살아가는 개들을 말하는데 이름이 있고 주인이 있지만 주인과 같은 공간에 살며 함께 생활하지는 않는다. 주인과 개 사이에는 엄격한 위계가 있고, 개들은 목줄에 묶여 살아간다. 목줄의 길이는 마당의 넓이와 주인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 마당개에게는 주어진 업무가 있는데 낯선 사람이 오면 짖어서 낯선 자가 왔다는 것을 알리고 그를 위협하는 것이다. 마당개의 주인은 밥값을 하는 개에게 밥을 챙겨주지만 정말 최소한의 돌봄만을 제공한다. 우리 동네에도 다수의 마당개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주거 환경은 그리 좋지 못하다. 길가 리어카 옆에 살던 뽀삐와 대문 앞에 묶여 있던 이름 모를 마당개는 모두 짧은 줄에 묶여 있었다.

지켜본 바에 의하면 마당개들은 자주 바뀐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아닐까 한다. 첫째로는 예방접종이나 심장사상충 예방 등 기본적인 의료적 돌봄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외부환경에 노출되어 있으니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강아지가 문제 행동을 하거나 나이가 많으면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팔아버리는 경우도 많다. 나도 해리와 산책 길에 개 너무 오래 키우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개가 나이 들면 집도 못 지키고 병들어 쓸모가 없어지니 그러기 전에 다른 개로 바꿔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 아닌가 싶다. 강아지가 집 지키는 경보장치도 아닌데 낡기 전에 교체하라니 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당개 중 암컷은 돌아다니는 개와 교미하여 새끼를 낳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태어난 새끼들은 주변에 나누어주거나 팔거나 버려진다. 최근 유기동물보호소에 마당개로 많이 키우는 진도견과 믹스견 비율이 폭발적으로 높아졌는데 대부분 마당개 출신으로 추정된다. 이를 방지하고자 마당개의 중성화 수술을 지원하는 사업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사실 실외에 묶여 생활하는 것은 개에게 매우 못한 환경이다. 외부 자극에 그대로 노출된 강아지는 자신이 생활하는 공간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내내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함을 느낀다. 이런 강아지들은 사납게 짖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 독일, 스위스, 미국, 호주 등의 국가는 동물을 묶은 상태로 기르는 것을 동물학대로 규정하고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예전이야 방범시스템이 허술하고 도둑이 많아 집을 지키는 너도나도 마당개를 키웠다지만 도어록과 CCTV 등 각종 방범 장치들이 널리 보급된 요즘 같은 시대에 아직도 이런 방식으로 개를 키워야 하나 생각이 든다.


해안산책로나 마을 안길에서 만나는 개들 중에 떠돌이 개도 있다. 워낙 외진 동네인데 어떻게 흘러들어왔을까 궁금한데 다시 생각해 보면 위험을 피해 외진 곳으로 숨어 들어오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떠돌이개들은 일정한 거처 없이 돌아다니면서 먹이를 구하고 은신처를 찾는다. 무리를 짓는 것은 보지 못했고 대부분 한 마리씩 따로 다녔다. 가끔 두 마리가 함께 다니는 경우도 있는데 교미를 하기 위한 일시적인 어울림 같았다. 겉모습을 보면 야생화된 들개 같지는 않고 사람이 키우다가 유기했거나 집을 잃어버린 강아지들이다. 떠돌이 생활을 시작할 무렵에는 영양이나 위생 상태가 대체로 양호하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건강이 나빠지게 된다. 안타깝게도 떠돌이개들의 수명은 매우 짧다. 로드킬 등 사고를 당할 위험도 높고 사람에게 길들여진 개들에게는 스스로 먹이를 구하거나 야생에서 만나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에 대한 경계심은 점점 높아져 가서 돌보거나 붙잡는 것은 어려워진다.

작년에 오랜 기간 주기적으로 마주쳤던 강아지는 검고 구불거리는 털을 가진 소형견이었다. 소형품종견인 것으로 보아 사람과 함께 살다 버려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제법 깔끔한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꼬질꼬질해졌다. 차가 다니는 도로가를 위태롭게 걸어 다녀 잡아서 보호하려고 했으나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먹이로 유인을 하니 함께 다니는 누렁이는 제법 가까이까지 다가오는데 녀석은 멀찍이 거리를 둔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3개월 정도 흘렀을까. 시 보호소 공고에 그 강아지가 올라왔다. 살펴보니 그 사이 출산을 한 모양이다. 새끼 강아지들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사하였고 어미 강아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고 한다.


시골에 사는 개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좋은 이미지, 자유롭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가는 강아지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키우기 힘들어진 강아지를 시골에 보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더러 만날 수 있는데 그들은 파양한 것이 마음 아프지만 자신의 이 선택으로 강아지도 공기 좋은 곳에서 강아지답게 행복한 삶을 살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은 어쩌면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시골 마을에서 만난 강아지들의 삶은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 그들 중 대부분은 목줄에 매여 좁은 원을 그리며 평생을 살아가거나 정처 없이 떠돌다 삶을 마감한다. 불행한 얼굴을 하며 온몸으로 경계심을 표하고 있는 강아지를 마주할 때면 무엇이 너를 이렇게 두려움에 떨게 했을까 묻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는 우리를 사랑해서 많은 것을 내어준 오랜 친구들을 홀대하는 부끄러운 모습의 인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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