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에는 비용이 들었다. 불안한 감정은 소비로 이어졌고, 그 소비는 별다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괜한 비용을 들이더라도 갖고 있던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다면 기꺼이 돈을 쓰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흔히 쓰지 않아도 될 돈을 홧김에 엄한 데 쓰는 돈을 속된 말로 '시발 비용'이라 한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굳이 안 써도 될 돈이었지만, 홧김에 버스 대신 택시를 타며 오히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과 같다. 나 역시 불안함에 못 이겨 대학 편입 시험에 응시하며 이 '시발 비용'을 지불했다. 이미 대학은 졸업했지만 더 좋은 대학에 가면 상황이 나아질까,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면 좀 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거의 10만 원에 이르는 편입 원서비를 결제했다.
미쳤니? 너 나이가 몇인데?
사람에 따라서는 거의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대학을 졸업했는데 또 대학을 간다고 하니, 지금 학교를 다시 갈 때냐며 온갖 구박을 다 들었다. 아직 결과 발표가 난 것도 아니고, 확정된 것도 아닌데 왜 이리 흥분일까.
의아했지만, 전혀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평범한 사람의 시선에서는 대학을 졸업했으면 빨리 취업 준비를 하거나, 취업 준비를 하기 위해 또 다른 경쟁력을 올리는 것에 집중해야 맞다고 생각할 테니까. 차라리 대학원에 가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고들 생각했을 것이다.
2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늦은 걸까?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물론 아직 편입 대학에 붙은 것도, 편입 준비를 하고 원서를 낸 것도 아니었지만, 차라리 대학원에 가라는 말보단 대학에 가서 배우는 게 더 이득일 거라 생각했다. 해당 분야에 아직 깊이가 없는 상태에서 언제든 갈 수 있는 대학원 말고.
솔직한 말로 학벌도 신경 쓰였다. 기존 내 전공에서 그래도 인정하는 학교라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자랑스럽지는 않았고, 더 솔직한 말로는 고3, 재수 시절의 성과와 결과에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마음에 짐이 몇 년 간 계속 남아 있었고, 졸업 후 불안함이 쌓이고 쌓여 한 순간에 폭발한 것이었다.
대학 재학 중 결정했어야 할 일을 지금 했다고 해서 후회는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시발 비용'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가심비'나 다름없었다. 거의 버리는 돈과 같았지만, 원서비를 다 합치면 거의 20만 원이나 되는 돈이 결코 아깝지 않았다. 땅을 파도, 하늘에서 떡하니 나오는 금액은 아닌데도 심적으로는 괜찮았다. 준비도 안 한 상태에서 그냥 본시험이기에 정말 그냥 버리는 돈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무언가 해보겠다는 자그마한 뜨거움이 마음속 어디 간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느꼈으니까. 그래도 이토록 돌고 돌아서 가고 싶었던 곳, 제때 원하던 곳에 갔으면 훨씬 더 좋았겠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의 불안함을 돈으로 쓰곤 했다. 결국 불안함과 비용은 치환 가능했다. 조금 더 높은 영어 점수를 얻기 위해 시험 한 번에 5만 원에 가까운 돈을 지불하고, 꽤 많은 비용을 들여 각종 자격증을 따고 강의를 들었다.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돈을 더 들여서라도 소위 '스펙'이라 불리는 것들을 채워야 했다. 결국 이 불안함을 해소하는 데는 기꺼이 돈을 들여 얻어야 했다. 각종 자격증과 영어 성적, 인턴 경험 등 이력서를 빼곡히 채울만한 것들을 모두 채웠다고 해서 이 불안함이 지워지지 않았다. 원하는 업을 시작하기 전까진 계속될 것들이었다. 직무와 더 관련 있는 일을 하려 발버둥 쳤고,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 인턴을 하는 것만으로도 거쳐야 할 관문들이 많았고, 제자리를 걷는 듯한 길은 자책으로 이어졌다. 돈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불안감은 오히려 스스로를 더 갉아먹을 뿐이었다.
돈뿐만 아니라 시간도 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더 들을 수업이 없는데도 졸업을 유예시키고,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채 풋풋한 신입으로 입사하기 위해 암흑기 취준생 기간을 되도록 짧게 만들려 애썼다. 자기소개서 경험란에 적을 특별한 에피소드를 채우기 위해 '경험을 위한 경험'을 하며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을 썼다. 취업을 하기 전부터 알게 모르게 더 많이 드는 돈을 충당하고 동시에 경험과 경력을 쌓으려고 학업과 일을 병행하기도 했다.
원래도 삭막했던 취업난이 코로나 여파로 더 심해지면서, 갈수록 청년층 취업률이 낮아진다는 뉴스를 보면서 수많은 청년들 중 한 명인 나 역시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취업난이라지만 일을 하는 사람은 있었고, 나는 떨어져도 누군가는 붙는 사람이 있었을 테니까.' 웬만한 인간관계는 적당히 거리 둔 채 유지만 하며 이 암울한 시기를 이어가는 게 쉽지는 않았다. 마음에 여유는 더 없었고, 야속한 시간은 더 원망스럽고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취업을 준비할 때 멘털 관리를 하라는 말들이 도덕 교과서 같은 원론적인 말 뿐이라 와 닿지 않았다. 누군가의 인생을 거는 일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 뻔한 말들은 너무 가볍고 쉬웠다. 긍정적인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생각만으로는 마음먹기 쉽지 않았고, 이 험난한 세상을 마주하기엔 너무 이상적인 상상일 뿐이었다.
스티브 잡스의 명언 중
'앞을 내다보면 점을 연결할 수 없지만, 뒤를 돌아보면 그 점을 연결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찍은 그 점들이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될 것이라고 믿어야 한다.'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단편적으로는 의미 없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결국 하나의 원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과가 어떻든 지금 한 이 도전이 나중에 다른 도전으로 이어지고,
하나의 점들이 모여 의미 있는 선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s.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