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학생이 되었다. 학생이었다 잠시 직장인이었다가 취업 준비생으로 돌아왔고, 이제는 학생이다. 졸업식도 없는 졸업을 하고 전혀 실감하지 못한 채 학생 신분을 벗어났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다. 취업 준비가 힘든 건 사실이었지만, 학생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이렇게 현실로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공부가 필요했다. 일도 해보고 취업 준비도 하다 보니 제일 쉬운 건 역시 공부였다. 어릴 땐 공부가 제일 쉽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이제야 깨달았다.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는 것 같다. 책을 읽을수록 마음의 양식을 쌓는 듯 마음이 더 풍족해졌고, 아는 게 많아질수록 더 현명해지리란 믿음도 생겼다.
운 좋게 편입 대학에 합격하고, 다시 대학으로 걸음을 돌렸다. 모두가 반대했다. 이미 대학도 졸업하고 다 늦은 나이에 무슨 다시 대학이냐고. 그럴 때가 아니라고. 그럼에도 이상하게 걱정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설렘만 넘쳤고 더 잘 될 것만 같은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모두가 아니라고 했다. 안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누가 뭐라 해도 내 인생이었고, 누구보다 자신을 믿었기 때문이다. 틀린 방향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쩌면 옳은 길이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있는데, 어떻게든 그 길을 가야 한다면, 얼마큼 오랜 시간을 들여서든 얼마나 오래 걸어야 하든, 원하는 최종 목적지에 가는 게 맞았다.
의상 디자인학과에 갔다. 역시 모두가 틀렸다고 했다. 너와 맞지 않는 학과라고. 너의 꿈과는 거리가 멀지 않냐고. 너무나 당연하게 예상했던 반응들이었지만 역시 그들의 생각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세상 그 어떤 것도 디자인되지 않은 것은 없었고, 가장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결코 내 꿈과 거리가 멀지 않았다. 서로 다른 분야지만 공통점은 꽤 있었고,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옷을 안다는 것은 옷을 입을 사람을 안다는 것이고, 그 사람을 안다는 것은 결국 사람이 사는 사회를 아는 것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먹고 즐기는 것만큼 옷을 입고 즐기는 것 또한 전혀 동 떨어진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있었고 포기할 수 없었다.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있으면 버티는 거야.
나의 아저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다. 구조기술사인 동훈은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것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항상 외력보다 내력이 세게.''라고 말한다. 외력보다 내력이 세면 버틸 수 있다. 살면서 수많은 외력에 흔들리고 무너지지만, 결코 우리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그만큼 내력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내력을 쌓는 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 어떤 일이라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면 강한 바람에도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내력을 쌓기 위한 방법은 다시 학교를 가는 것이었다. 다시 학생이 되어 공부하고, 영화를 찍을 때처럼 옷을 만들며 한 가지에 열중하고, 그 과정에서 또 배우고 성장하는 것. 그것이 단단한 내력을 만드는 데 필요했다. 내력은 결과보단 과정에서 쌓아진다 생각한다. 실패를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배움이 있다면 만족할 수 있고, 그 속에서 얻은 감정까지 끝까지 소화시키다 보면 결국 외력보다 내력이 세진다. 스스로를 버티게 하는 힘, 그게 내력을 채우는 법이다.
여자 20대 후반은 새로 시작하기 늦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춘기처럼 혼란스러웠던 20대 초반을 지나고 보니 오히려 전에 없던 용기가 생긴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아까운 나이는 아니다. 20대 후반을 바라보고 나서야 무엇이든 부딪혀 볼 용기가 샘솟고 목표는 더 또렷해진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를 일부러 멀리 돌아간다는 생각은 안 한다. 빙빙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한 곳에서 만나기 위한 일이다.
아무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라 해도, 지금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평생 동안 하고 싶은 일이기에 조금 늦더라도, 아직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라서 쉴 틈 없이 발을 젓는다.
모두가 아니라 해도 홀로 ''예쓰!''를 외치며 가자. 모두의 의견이 꼭 맞는 것은 아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