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어떡해 이게 맞는 거 같은데.
너 참 말을 안 듣는다
결국 일을 저질렀다. 원래 하고 싶은 일은 하고 보는 성격이라 각오는 되어 있었다. 엄마한테 욕을 먹을 각오.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생각대로, 계획대로 진행했다. 어차피 내가 선택한 일에 후회는 안 했다. 지금까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왔다. 직성에 풀릴 정도로 모든 걸 다하진 않았지만 내가 맞다고 판단한 일은 끝까지 밀어붙이는 성격이었다. 엄마랑 마찰이 많을 수밖에 없었지만, 역시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었다.
20대 중반을 넘어 후반을 앞두고 편입을 해 버렸다. '해 버렸다'는 것은 처음에는 굳이 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편입이 되어 있던 것이었다. 원서를 낼 때만 해도 대학입시보다 더 바늘구멍이라는 편입 구멍을 내가 통과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편입 공부를 따로 한 것도 아니었다. 기출문제를 보니 생전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단어들만 눈에 띄어서 엄두도 못 낼 곳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 보다는 조금 나아 보이는, 아는 단어들이 몇 개쯤 보여 왠지 풀 수 있을 것 같은 학교들만 넣었다. 정말 그냥 '될 대로 돼라'는 식의 마인드로 그냥 한 번 시험 삼아 시험을 봤다.
물론 붙으면 좋겠지만 무조건 붙어야 된다는 부담감도 없었다. 영어를 엄청 잘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주입식으로 외웠기 때문에 단어는 많이 아는 편이었고 토익 공부하면서 독해는 그래도 자신 있었다. 단어랑 문장 해석만 어느 정도 할 줄 알면 될 거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고사장으로 향했다. 시험 당일날 왠지 같은 학교를 가는 것만 같은 학생 무리들이 지하철에 여려 보였는데, 그중 책가방을 매고도 필통 말고는 들은 것도 없이 아주 가벼운 상태로 임하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열심히 노트에 적힌 무언가를 계속 보고 있는 학생들이 간혹 보였는데, 조금 찔렸다.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한 사람도 있는데, 시험 전날 기출문제 대충 한 번 보고 시험장에 들어간 내가 무슨 수로 합격하나 싶었다. 그래도 이미 학위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 없이 임할 수 있었다.
또 한다고 하면 열심히 했다. 실은 나온 대학이 있고, 취업 준비에 더 매진하면 되기에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이미 원서에 꽤 많은 돈을 들였고, 합격한다고 해서 나쁠 건 없다 생각했기에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회를 해도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니까 내가 선택한 일에는 최선을 다했다. 문제는 꽤 쉬웠고 잘 풀었다 생각했다. 시험장 밖을 나오면서 잘하면 붙을 수도 있겠다 예상했다. 만약 '진짜 붙어버리면 어쩌지' '엄마가 그거 할 때냐고 또 반대할 텐데' 속으로 걱정도 많았다. 이미 예상했던 일들이기에 실제로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지원 대학은 총 4개. 그중 2개는 불합격이고 2개는 예비 번호를 받았다. 한 개는 꽤 앞번호라 가능성이 있어 보였고 다른 한 개는 한 자릿수 번호긴 했지만 워낙 인기 학과라 불안했다. 사실 예비를 받았어도 추가 합격에 가망 없어 보이는 학교를 더 가고 싶긴 했다. 취업 준비를 하며 수차례 지원서를 넣고 결과를 받아보곤 있지만, 고등학생으로 되돌아 간 느낌이었다. 기다리지 않은 순간에 예상치 못한 전화를 받았다. ''○○○님은 이번 편입학 전형에 합격하셨습니다.'' 기다리던 전화였고,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고등학생 때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고, 재수를 할 땐 그리 개운한 느낌은 못 받았고, 취업 준비를 하면서는 거의 들어본 적 없었다. 합격 전화가 이렇게 사람을 가슴 벅차게 하는구나. 이미 대학을 다녀봤는데도 새로운 입학에 왠지 설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일찍 편입 시작할 걸', '아니 처음부터 잘 갈 걸' 하고 조금은 시원섭섭했다.
우연히 한 커뮤니티에서 편입 불합격 수기를 본 적 있었다. 단 몇 개월 공부해서 서울 상위권 대학에 합격해 대박 성공 신화로 포장한 글보다는 실패하고 좌절해 쓴 글들이 더 눈에 들어왔다. 1년 간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했는데 생각보다 결과가 좋지 못해 이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준비하는 데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상심해 적어 낸 글들을 보며 어떤 말이 위로가 될지 고민하게 했다. 비슷한 이유로 수 없이 좌절해본 적 있었기에 몇 관왕씩 했다는 글을 자랑스럽게 써 보인 글을 보며 축하는 해주고 싶지만 썩 마음이 좋진 않았다.
이젠 실패로 낙담하고 주저앉았을 때 그 어떤 글도 내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저 혼자 깊이 고민하고 스스로의 답을 내려 마음을 다잡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솔직히 운이 좋았다. 준비도 대책도 없이 맞은 시험이고 정성껏 풀었지만, 그들에 비하면 따로 준비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꽤 만족스러운 성과였다. 그래서 운이 좋았다는 말로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관심 있는 학과, 내 꿈과 조금이나마 관련지을 수 있을 학과로 정했다. 그리고 공부하다 보면 길이 보일 거라 생각했다. 내 생각은 분명했고 흔들림 없었다. 편입을 하겠다 정한 건 순전히 학벌 때문만은 아니었다. 솔직히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게 평가받는 게 현실이라고 느낀 것도 맞지만, 다른 분야에서 내 전문성을 키우고 싶었던 것도 큰 이유다. 특별한 내 전문성이 있는 것이 꿈을 이루기 위해 더 확실하고 구체적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엄마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차라리 대학원을 가서 더 공부를 해라' 혹은 '취업 준비를 더 열심히 해라'과 같은 말들만 반복했다. 엄마가 한 말도 나름 일리가 있었지만 엄마의 생각이 모두 옳은 것은 아니었다. 운을 차 버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수백만 원 하는 등록금을 손 떨며 입금한 것도, 학교를 다니며 더 많이 배우고 공부하기로 한 것도 모두 잘한 일이라고 믿고 싶다. 지금까지 찍어온 수많은 점들 중 겨우 하나의 작은 점에 불과하지만, 언제가 그 모든 점들이 하나로 연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믿는 것만큼 자존감이 높아지고 자신감이 채워지는 것 없다. 그 어떤 길이라도 항상 같이 가는 건 '나'이기에 누구보다 스스로를 믿어줘야 한다.
어제는 이번 일로 엄마와 말다툼을 벌였고, 그로 인해 어제 먹은 저녁을 체한 것 같아 약을 먹고 몸을 뉘었다.
그리고 '괜찮아. 잘했어. 잘한 일이야.'라고 되뇌며 스스로를 토닥이며 잠에 들었다.
의심하지 마
스스로를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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