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서울 반대편에서 회의가 있는 날이었다. 회의는 늘 언제 끝날지 예상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막막해질 때, 여러 의견을 제시하지만 별다른 새로운 지점이 보이지 않으면, 회의 중에도 마음이 무거워지고, 지쳐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날 회의는 그리 늦지 않게, 그리고 서로 힘들지 않게 잘 끝났다. 회의가 있는 날이면 집에서 더 멀어진 나를 배려해 주시며 조금 일찍 집으로 보내시곤 했다. 때론 상사처럼, 때론 엄마처럼 챙겨주시는 본부장님이셨다. 오늘도 어김없이 “역까지 데려다줄까?”라고 물으셨고, 나는 괜찮다고 연신 손사래를 쳤다. 감사한 마음만큼 죄송스러운 마음이 더 크게 느껴져서였다.
회의실에서 역까지는 버스 타고 10분 남짓이다.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뭐 얼마나 걸린다고.” “차로 3분이면 가는데” 본부장님 말에 못 이겨 결국 차를 얻어 타고 역으로 향했다. 본부장님이 집으로 가는 방향과 내가 역으로 가야 하는 방향은 반대다. 그래서 마음이 더 불편하면서도 감사했다. 내가 집으로 일찍 퇴근하고 싶은 만큼 본부장님 역시 집에 빨리 가서 쉬고 싶을 것이니 말이다. “걸어서 힘든 것보다 낫지” “이 정도는 힘들지도 않아”라고 말씀하셔도, 비효율적인 동선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일이 충분히 귀찮은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역까지 편하게 도착해 지하철을 타며 ‘이런 게 사랑 아닐까?’ 생각했다. 나의 수고로움으로 상대가 더 편하고,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상대의 힘듦을 내가 대신할 수 있는 마음은 사랑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쉽고 편한 것을 먼저 생각하고 찾게 될 텐데, 시간이 더 걸리고, 그만큼 더 움직여야 하는 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도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내가 잠을 덜 자고, 내가 더 움직여야 하고, 내가 더 시간을 들이더라도 같이 있는 시간을 더 늘리기 위해, 더 빨리 보고 싶어서 기꺼이 나의 수고를 더해왔다.
내가 더 힘들어도 괜찮다는 것 그리고 이 정도는 내가 너를 위해 해줄 수 있다는 것. 이러한 비효율을 이해한다는 건, 사랑한다는 뜻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행동에 의미가 담겨 있고, 행동이 그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고, 행동으로 감정을 느낀다. 말 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좋다. 말의 따듯함 이상으로 행동까지 따뜻함이 묻어나는 사람이 좋다. 그 행동에 사랑에 포함되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