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봄과 여름은 내 축구 인생에서 가장 에너지 넘쳤던 시기였다. 2021년 가을 우승컵을 들어 올린 뒤로 실력도 자신감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됐다. 이 때는 축구에 빠진 정도가 아니라 거의 미쳐있어서, 주 7일 공을 찼다. 클럽이나 동호회 3~4회, 개인 레슨 1~2회, 개인 훈련 2~3회 정도 했으니, '밥 먹고 공'이 일상이었다. 플랩이나 아이엠그라운드 같은 소셜 매칭 게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 클럽에만 뿌리내렸던 나는 이 시기 다른 클럽을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원래 다니던 클럽이 규모가 커지면서 인원이 많아지고 매주 새 회원을 맞이하는 것에 지쳐갔다. 축구(풋살)는 팀으로 하는 운동인데, 매주 팀원이 달라지고 새 팀원에 맞춰 훈련도 매번 비슷한 것에 불만이 생긴 것이다. 물론 에이스 선수들로 이루어진 팀은 그들 만의 팀워크를 계속 유지할 수 있었지만, 나처럼 그저 그런 실력의 선수는 에이스팀에도 못 끼고 신입팀에 끼기에도 어정쩡했다. 목마른사슴이 우물을 찾는 법. 그렇게 나는 하나의 풋살팀과 하나의 축구팀에 새로 가입했다.
그러다 나의 '친정' 클럽에서 봄 풋살대회를 열었다. 대회에 나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나름(?) 극복한 나는 축구 동료들에게 함께 나가자고 제안을 했다. 그런데 몇몇이 회의적이었다. 대회에 나가서 민폐가 될까 봐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들의 푸념을 들으니 나의 첫 대회가 생각이 났다. 나 역시 얼마나 떨고, 얼마나 자책을 했던가. 돌아서고 나니 그 떨림도 자책도 나를 성장시키는 과정이었다. 축구 동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주절주절 한 적은 있지만, 얼마나 그들에게 닿았을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전부 납득하지는 못했을 것이다.경험을 해야만 알 수 있는 영역이란 게 세상에는 존재하니까.
한창 축구에 미쳐 있을 때 내 '선수관'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단언컨대 이 드라마는 청춘로맨스물이 아니다. 나희도 선수의 성장 드라마다.
사실 많이 떨렸다. 그때 "부담감도 경험"이라는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중 나희도의 대사를 떠올렸다. 나만 아는 땀의 농도를 사람들 앞에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 진땀 나는 일이다. 그렇지만 선수니까, 대회에 나가야 선수로서 의미가 생긴다는 것은 반박할 수 없는 논리였다.
대회날 아침. 일산 근교 한강 둔치에 위치한 경기장까지 가는 동안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중전을 우려하며 대회장에 도착을 했을 땐 마법처럼 하늘이 개었다.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다녔다. 마치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그곳에서 우리 팀은 달렸고, 찼고, 넘어졌다. 골을 넣어 기뻐하고, 편파적 판정에 분노하고, 아쉽게 져서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벽을 넘었다. 선수라는 의미를 획득해야만 넘을 수 있는 벽을.
이 대회에서 우리 팀은 준우승을 했다. 나는 5경기 4골을 넣고 다득점 골든 부츠상을 받았다. 7명까지 주는 다득점 수상자 명단에 마지막 턱걸이로 들어간 것이다. 물론 나의 다득점 기록은 기가 막히게 어시스트를 해주고, 기를 쓰고 수비를 해준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쨌든 세상에나 만상에나였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었다.느리고 어설프고 소심한 내가 공격수로 인정받은 날이 왔으니 말이다. 뻥 차는 여자의 성장 드라마 한 페이지를 새로 쓴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