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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Mar 09. 2020

중압감을 느낀다

책임감과 중압감은 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중압감 없이 책임감을 얘기할 수 없고, 책임감 없이 중압감 또한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중압감을 가질 이유가 없다. 또한 중압감 없는 책임감도 불가능하다.


나는 내 나이가 마흔이 되었을 때, 중압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나에게 마흔은 어려운 시기였지만 가장 중요한 세월이기도 했다. 내가 마흔이 되었을 때, 비로소 어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이로 따지자면 진작부터 어른이었지만, 마흔이 될 때까지 내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에게 어른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한다. 다시 말하면 내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인식하고 움직이느냐가 나를 어른이라 생각하게 만들었지 싶다.


내가 책임감으로 인해 느끼는 중압감은 아마도 사랑 때문일 것이다.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기에 어쩔 수없이 느끼는 삶의 무게라고 할 수 있다. 어제와 오늘처럼 내일도 그 무게가 무거워질 거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에게 주어진 삶을 살기 위해 발버둥 칠 테니까.


사실 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삶은 그저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인가 읽었던 소설에서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책을 읽으며 일련의 내 인생을 돌아보니 나 역시 그저 살아온 삶이 아니라 살아낸 삶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주어진 삶은 과거는 물론 현재 또한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이 세상 사람들 중에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픔이 클지라도 아픔 또한 삶의 한 과정이기에 아픔을 모르고서는 기쁨도 사랑도 알 수가 없다. 사실 힘들고 아픈 것도 모두 사랑 때문이다. 자신이 품은 사랑을 지켜내기 위해 아픈 것이다. 주위에 사랑으로 맺어진 사람이 없다면 삶이 무거울 이유도 아플 이유도 없다. 살아야 하니, 살고자 하니 그 무게가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아픈 시간을 살아왔고, 지금도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내 곁에 아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지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 움직임과 사랑이 다르게 이해되었다.


중압감을 느낀다는 것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는 상태다. 회사 업무로 중압감을 느낀다면 힘들지라도 자신의 발전을 기대할 수가 있다. 긴장감도 중압감도 없이 일을 한다면 남들보다 뛰어난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것은 뻔하다. 일이든 시간이든 뭔가에 쫓겨야 그럴듯한 결과가 만들어진다. 누군가 중압감을 느낀다면 현재의 상황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마음의 신호라 생각하면 된다.


자신의 마음은 모든 것을 꿰차고 있다. 마음이 책임감과 그로 인한 중압감을 요구하면 변해야 한다. 반면에 마음이 무사태평 어떤 요구도 없다면 발전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작든 크든 누구나 중압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중압감을 느낀다는 것은 분명 달갑지 않은 일이 맞지만 그 중압감의 결과를 생각해 본다면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중압감을 느끼며 해냈던 일은 실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결과도 좋았다.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만이 중압감을 느낀다. 자신의 앞날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마음 자체가 없다. 미래에 대한 기대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마음이며, 그것을 가져올 수 있게 하는 마음이다.


누구나 미래를 꿈꾸지만 미래는 기약되지 않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일 뿐이다. 이러한 시간을 대하는 마음의 태도가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꿈이 이루어지든 아니든 미래는 계속해서 미래가 될 수밖에 없다. 미래가 현재가 되었다 한들 또다시 다른 미래를 기대할 테니까.


미래는 현실이 아니라 마음이 품은 생각일 뿐이다. 결국 미래는 현재가 되어야 알 수 있다. 미래를 기대한다면 어쩔 수없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현재를 보낼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도 걸음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없이 행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대로 멈춰버리면 현재도 미래도 없을 테니까.


중압감이 느껴지는 현재를 제대로 살아내는 것이 미래를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드는 일임에 틀림없다. 오늘도 두렵다. 하지만 내 걸음을 멈출 수는 없다. 얻고 지켜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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