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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Oct 28. 2020

후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예전에는 나도 형이 있었다. 유년시절 나는 자주 형을 따라다니곤 했다. 형은 열세 살, 나는 아홉 살이었다. 형은 말수가 많지 않았지만 친구들과는 곧잘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다. 내가 기억하는 형은 어렸을 때는 물론이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인기가 많았다는 사실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형은 그림을 잘 그렸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그림이, 아니 감동을 받은 그림이 형의 작품이었다. 예술에 가까웠다. 형은 특히 태권 V를 자주 그렸다. 마징가 Z와 아수라백작을 그리기도 했지만 형의 그림은 태권 V가 대부분이었다. 볼품없는 몽당연필은 언제나 형의 손에서 마법을 부렸다. 곱고 작은 손에서 믿기 힘든 것들이 만들어지곤 했다. 그림은 음영까지 더해져 멋진 작품이 되었다. 형은 내게 특별히 케산을 그려주었다. 쓸쓸해 보이지만 과묵한 케산이 나는 무척 좋았다. 뭔가 신비해 보였기 때문이다. 언급은 안 했지만 형도 좋아했을 거다. 나는 형의 그림을 보면서 감탄이라는 단어를 알았다. 어쩌면 그때의 내 마음은 존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언제나 멋진 형을 쫄래쫄래 쫓아다녔다. 하도 따라다녀 형 친구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냈다. 4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형 친구 이름이 생각이 난다. 양성직, 고호영, 내게 특별히 잘해준 좋은 형들이었다. 특히 나는 호영이 형을 좋아했다. 그 이유는 형의 여동생을 짝사랑했기 때문이다. 긴 머리에 하얀 얼굴을 가진 아이였다. 형과 함께 그 아이를 보러 호영이 형 집으로 태연한 척 가곤 했다. 나는 조립식 장난감을 만들고 있는 형들 사이로 능구렁이처럼 몰래 그 아이를 훔쳐보았다. 그저 쳐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기분이 좋았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형은 일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나를 데리고 아랫동네 전자오락실을 갔다. 그때가 아마도 1979년도였을 것이다. 형은 인베이더를 사랑했다. 갤럭시도 잘했지만 오락실에 도착하면 무조건 인베이더부터 했으니까 말이다. 지금 보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게임이지만 그 당시에는 최고의 게임이었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한 판을 하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서 형은 일요일 아침, 누구보다 일찍 오락실로 출근했던 거다.


형의 작은 손으로 열릴 것 같지 않은 양철 문을 두들기면 잠에서 금방 깨어난 듯, 아저씨가 부스스한 모습으로 나왔다. 밝은 빛 때문에 아저씨의 두 눈이 금세 찡그려졌지만 싫은 내색은 전혀 없었다. 아저씨와 우리 사이에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형과 나는 어두컴컴한 오락실 안으로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온 아저씨가 두꺼비집을 열고 스위치를 하나 둘 올리면 전기 소리와 함께 형광등이 켜지고 오락기계 전원이 들어왔다. 나는 장난감 나라에 와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형형색색 갖가지 셀로판지가 붙어있는 흑백 브라운관은, 번개 비슷한 것이 한 번 내려쳐진 다음 서서히 밝아졌다. 그 시간 내 심장도 빨리 뛰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때, 설렘과 흥분을 알지 않았을까?


아저씨가 한눈에 봐도 무거운 열쇠 꾸러미를 들고 우리에게 다가와서는 자물쇠가 채워진 오락기의 배를 열었다. 아저씨는 오락기 뱃속 깊숙이 손을 넣으며 “이건 보너스다’ 하며 미소 지었다. 약속이나 한 듯 형과 나도 미소 지었다. 인심 좋은 아저씨는 첫 손님이라고 언제나 두세 판을 공짜로 넣어주었다. 그 모습이 대장부 같아 보였다. 두 시간 정도 주어진 시간, 형과 나는 아무도 없는 둘만의 공간에서 별다른 말없이 오락에만 열중했다. 진짜로 우리는 거의 말이 없었다.


형은 무뚝뚝했지만 나를 많이 데리고 다녔다. 가끔씩 화를 내는 형이 무섭기도 했지만 형은 언제나 약한 나를 보호해 주었다. 형도 약했지만 형이니까 나를 지켜주었을 것이다. 언제인가는 친구들과 놀러 가는 형을 쫓아간다고 졸랐다가 불 같이 혼난 적도 있지만, 마음이 안됐는지 결국 허락을 해준 적도 있었다. 과묵한 형은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겨울이면 뜨거운 방바닥에 앉아 형과 함께 방패연과 가오리연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연을 가지고 우리는 둑으로 갔다. 형이 만든 연은 항상 하늘 꼭대기에 있었지만, 내가 만든 연은 허공을 빙빙 돌다가 차가운 땅바닥에 곤두박질쳤다. 속상하지는 않았다. 하늘 높게 올라있는 형의 연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겨울날, 한강에 가면 형이 생각난다. 연은 어느새 애틋함이 되어 있었다.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받으며 높이 떠있는 연은 형을 닮았다. 나보다 네 살이나 많았던 형보다 벌써 20년을 이상을 살고 있는 내가 미안하다. 내가 어리석은 것은 누군가 떠났을 때, 알게 되는 것 때문이다.


나는 ‘있을 때, 잘해’란 말이 언제부턴가 좋아졌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여러 가지 뜻이 담겨있다. 과거도 있고, 현재도 있고, 미래도 있다. 또 원망도 있고 기회도 있고, 소망과 희망도 있다. 떠나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 누군가 떠나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들이다. 이제는 누군가 내 곁에 있을 때, 그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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