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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진 Oct 28. 2020

따뜻함으로 품는다

그날 아침, 나는 아빠가 알려준 반을 찾아 낯선 계단을 올랐다. 배정받은 교실 앞에 멈춰 서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교실 문을 두드렸다. 잠시 후 문이 스르르 열리고 여자 선생님이 나왔다. 나를 마주한 선생님은 흠칫 놀란 눈으로 빤히 쳐다볼 뿐, 어떤 말도 없었다. 불편한 침묵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네가 00 초등학교에서 전학 온 아이니?”


“네.”


나는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엄마는 어디 있니?”


나는 고개를 숙였다.


“혹시, 혼자 왔니?”


내 머리가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일단 들어가자.”


나는 선생님을 뒤따라갔다. 고개를 숙이고 교실에 들어섰지만 수많은 얼굴이 나를 쳐다보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숨이 턱턱 막히고 귓가에서 ‘우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도망가고 싶었다. 선생님은 칠판에 내 이름을 큼직하게 쓰고 난 후, 자기소개를 하라고 했다. 심장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눈 앞이 캄캄했지만 이겨내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00 초등학교에서 전학 온 00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내 말이 끝나고 창피함에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랐지만,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박수를 쳤다. 그 소리에 떠밀려 잠시 평정을 찾았지만 이내 불편함이 찾아왔다. 선생님이 내게 다가왔다.


“엄마는 왜 안 왔니?”


선생님의 커다란 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엄마가 어디 편찮으시니?”


선생님은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순간 교실 전체에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엄마가 어디 아파?”


취조를 당하고는 것처럼 자꾸만 물어오는 선생님이 무서웠다. 눈앞이 노래지고 교실 마룻바닥이 둥글게 올라왔다. 시커먼 운동화 옆에 눈물이 떨어졌다.


“엄마, 아빠 이혼했어요.”


내 두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선생님도 학생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나는 한동안 고개 숙인 채, 눈물과 콧물을 먹어야 했다.


아빠는 누가 물어보면 엄마가 아파서 시골로 요양 갔다고 말하라고 했지만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확실한 자기소개로 첫날부터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혼’이라는 단어 한 마디에 눈물보가 대책 없이 터져버렸지만 적응이 돼서 그런지 슬프지 않았다.


한순간 공간 이동을 한 것처럼 느껴졌다.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던 세상, 그 안에 내가 들어가 있었다. 안 그래도 숫기가 없었던 나는 어색함이 더해져 짝꿍은 물론 내 앞뒤에 있는 친구에게조차 말을 걸지 못했다. 또한 점심시간이 되자 할머니가 정성스럽게 싸준 도시락마저 창피함의 대상이 돼버리고 말았다.


새로운 친구들에게 기가 죽으면 안 된다며, 귀하디 귀한 어묵 반찬을 싸주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총천연색 텔레비전처럼 보이는 친구들의 반찬과 달리 누런 어묵은 흡사 생기 잃은 흑백텔레비전처럼 보였다. 할머니가 생각했던 최고의 반찬은 분홍빛 찬란한 햄 앞에서 맥을 못 추고 내게 진땀만 유발했다. 나는 불성 사나운 누런 어묵을 먹어 치우기 위해 끊임없이 어묵을 찔러댔다. 초라한 반찬이 더 이상 나를 더 초라하지 않도록 말이다.


그 시절은 그랬다. 누군가 가난하더라도, 누군가 장애가 있더라도 마음속에 있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행여나 그 마음을 들킬지 몰라 더욱더 신경을 썼다.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는 마음을 숨기고 또 숨기려 했다. 그게 올바른 일임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어린 나이일지라도 누구나 그렇게 행동을 했다. 이런 환경은 나를 그 세계의 일원인 양 자연스럽게 섞이게 했다. 내게 용기가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았던 친구들은 나를 기꺼이 품어주었으니까.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의 기억은 생생하고 선명하다. 환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내 안의 변화까지 있었기 때문이리라. 무슨 드라마의 한 장면도 아니고, 혼자 교실문을 두드리고 전학 온 나를 받아준 친구들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그 당시 나와 가깝게 지냈던 한 친구의 어머니는, 나를 아들처럼 챙겼다. 방과 후면, 날마다 친구의 집으로 가는 게 일상이었지만. 친구 어머니는 커다란 햄이 들어간 큼직한 김밥을 만들어주었고, 생전 구경도 못했던 카레를 직접 만들어주었다. 라면도 김치가 들어간 라면을 끓여주었다. 카레와 마찬가지로 처음 맛보는 라면이었다.


내게 처음으로 관심을 가져준 어른이라 할 수 있을까? 표현할 수도 없었고 해서도 안 됐지만 나는 친구의 어머니가 좋았다. 보잘것없는 나를 자신의 아들과 마찬가지로 애정으로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수북하게 자란 내 질긴 머리를 단정하게 깎아주기까지 했다. 여러모로 부족한 나를 때로는 가깝게 때로는 먼 발취에서 바라보았다. 나는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보일 듯 말 듯한 주위의 격려가 그렇게 결과가 되고 있었다.


서른 살이 되어서야 어렵게 연락이 닿은 친구, 나는 다짜고짜 친구 어머니의 안부부터 물었다. 나는 당장이라도 달려갈 기세였지만 내 바람과 달리 불가능한 일임을 눈치챘다.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친구의 말을 믿기 힘들었다. 성인이 된 내 모습을 자랑하고 싶었는데, 서운함이 한없이 밀려왔다. 조금 더 일찍 연락이 닿았으면 하는 마음이 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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