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정말 오랜만에 글을 쓴다. 그간 너무 바빴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덧붙여본다.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가족들의 방문이 잦았다. 나인 투 식스의 스케줄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해내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는 최근이었다. 작년 이맘때쯤에는 한참 논문을 쓰느라 말도 안 되는 스케줄을 감행했다. 강의도 하고 다른 연구와 학회 발표를 병행했었다. 하지만 일로서 바쁜 스케줄과 개인적인 일들의 바쁨은 또 다르다. 어떤 것이 더 낫고 어려운지를 구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것이 내 삶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컨트롤하는데 들어가는 힘이 다르다. 일은 상대적으로 쉽게 일상과 분리된다.
이러한 형태의 글을 오랜만에 쓴다. 논리적인 글을 쓴 지는 더더욱이 오래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이유는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가벼워지면 내가 의도한 대로 걷기 쉽다. 필요 없는 것들을 모두 짊어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줄 알기에 쓰기로 했다. 쌓아가는 것이 아니라 비워내는 것이 어쩌면 삶의 목적인 것을 가끔 우리는 잊고 산다.
내가 의도한 대로 걷는 것만큼 쉽게 내가 의도한 대로 살아간다면 어떨까? 내가 원하는 삶이 계속해서 펼쳐진다면? 원하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본다. 구체적으로 될수록 점점 현실과 가까워진다. 즉 당장 오늘의 할 일이 보이고 나의 방향이 분명해진다. 의도를 가진 아주 작은 단위의 할 일만이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은 다시 또, 방향이다. 인간은 몰입 속에서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자주 느끼는 만족감은 행복과 가깝다. 즉 멀리 있는 행복과 성공을 좇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단위의 지금의 할 일이 나를 여기 살아있게 한다. 나에게 묻는다. 지금 눈앞의 일을 어떤 의도 받아들일 것인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받아들인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려면 모든 안경과 여태껏 쌓아온 가치를 잠시 넣어두고 현재에 존재해야만 한다. 있는 그대로의 "그것"과 "나"만이 있는 상태. 잠시 판단을 멈춘 그 상태를 견디는 힘이 필요한데 그것은 연습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생각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쉽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떠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판단 없이 받아들이려는 나의 의도를 위해서 오늘도 판단 중지의 상태, 에포케를 연습한다.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굉장히 객관적이어야 하는 동시에 저마다의 주관적인 견해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저마다의 주관적인 견해를 이해한다는 것은 객관적인 일이기에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일이므로 상당히 어려운 과정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연습을 하는 이유는 상황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이 되면 과거나 미래에 머물지 않을 수 있어 생각이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새로운 상황을 접해야 할 때 이롭게 작용한다. 인간의 뇌는 패턴으로 지각하려는 특성이 있어 나의 사전지식과 끼워맞춰 현재를 해석하려 든다. 이러한 특성은 새로운 상황에서의 적응을 도울 수 있으며 모든 요소를 하나 하나 인식하지 않아도 되어 효율적이다. 그러나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패턴에 대한 어리둥절함 혹은 잘못된 해석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에 따른 결과는 이불킥 혹은 다시 올 수 있는 같은 미래에 대한 불안일 수 있겠다.
새로운 상황에 뛰어들 때, 새로운 사람에게 뛰어들 때, 혹은 새로운 나를 향해 달려나갈 때에는 잠시 판단을 중지하고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수용이라고도 불리는 받아들임을 나의 첫번째 의도로 설정해본다. 내려놓음으로서 혹은 껴안음으로서 느껴지는 홀가분함을 느끼고 싶다.
안녕하세요!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2023년 11월 13일에 적은 글을 토대로 재작성 하였습니다. 다음 글부터는 현재 시점에서부터 글을 연재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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