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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Han Oct 03. 2024

의도 세우기 연습, 시작하기

첫 번째 의도 시작하기, 시작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살펴보는 일

 올해가 벌써 3개월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라니. 말로 뱉고, 글로 쓰고, 내가 뱉은 말과 글을 다시 나의 감각으로 되짚어봐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다. 이쯤 되면 9월부터는 한 해를 보내주는 범국민적 의식을 치러야 한다. 마지막이 이렇게나 아쉬운 것은 어쩌면 나의 거창한 시작에 비해 아직 마무리할 일들이 남아있기 때문이거나, 그다지 거창하지 않았던 나의 시작이 아쉽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렇듯 끝과 시작은 저마다 어떤 의미가 있다. 나에게 마지막은 잘 맺어야 할 매듭이라면 시작은 평가 없이 찬찬히 살펴보는 관찰이다. 시작하는 사람은 어쩌면 본인에게 집중하는 것보다 주변을 살피는 게 유리하다. 나에게 집중하기보다 주변을 살피는 일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감각이 곤두서고, 자주 흔들리며, 쉽게 본래의 고유성을 잊게 한다. 유연한 감각과 발바닥의 단단한 감촉, 그리고 사물과 나 본연의 색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평가하지 않고 그저 관찰하는 것. 사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시작은 설렌다. 인생의 어느 시기에 만나든지 참 가슴 뛰게 하는 단어, 시작.  그러나 나는 시작을 마주할 때마다 항상 이 병에 걸린다. 너무 들뜨고 싶지는 않다는 "들뜨고 싶지 않아 병". 하하. 그저 막무가내로 지어내보았지만 이유 없이 찾아와 꾸준히 돌봐야하기에 병이라 표현했다. 나의 무게 중심을 너무 잃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에서 비롯한 것 같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모든 시작에서 나는 들뜬다. 이 마음은 항상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막연한 불안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초조함 등이 함께한다.


 하지만 이 세상에 "응애"하고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에게 무언가를 시작하지 않은 날들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떤 방식으로든 새로운 상황에 놓였다. 그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첫 번째는 관찰하기였다. 여기서 관찰하기란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살피는 것이다. 내가 닥친 상황, 그로 인해 느껴지는 감정, 이것을 해석하는 인지과정을 찬찬히 살핀다. 그리고 그 결정을 내린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받아들이고자 하는 방향을 명확하게 아는 것이다.


 올해 5월 나는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한국에서 연구와 강의를 병행하다가 남편의 직장으로 인해 하던 모든 일을 잠시 제쳐두고 새로운 곳에 터를 잡기로 했다. 터를 잡는다는 것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 나의 하루하루를 채우는 일. 하루를 채우기 위해 어떤 시간들은 일로 할애해 두었으나, 아이가 찾아오며 모든 것을 잠시 보류했다. 나에게 올해 벌어진 새로움의 키워드는 크게 두 가지였던 것이다. 뿌리내릴 나라, 그리고 나의 역할.


 내가 다닐 병원들조차 알아보기 전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인 낯선 곳에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마음으로 찬찬히 살펴보기란 교과서적인 말이었다. 말 그대로 패닉. 산부인과를 OB/GYN이라고 지칭하는 줄도 모르던 미국생활 초짜인 나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가 천근만근이었다. 스무 곳도 넘게 전화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보험과 초진 예약을 잡을 수 있는 조건을 동시에 만족하는 병원을 찾지 못했다. 잠시 서치와 전화 통화를 멈추고 생각했다. '아, 이 나라는 이런 곳이구나.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는 이렇구나.' 그리고 내가 잘못 접근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겨둔 채 잠시만 멈추자고 생각했다.


 아이가 찾아온 기쁨, 새로운 곳에 우선 다시 잘 심었다는 뿌듯함을 느끼자. 시작하는 마음을 온전히 가지자. 이 방향을 가지고 다시 시작하자.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할 일이 정해졌다. 1) 리퍼(가정의학과와 같은 병원에서 산부인과로 연결해 주는 것)를 받기 위해 PCP 예약하기, 2) 산부인과들 중 내가 가진 보험과 새로운 환자를 받는 병원 추리기.


 시작하는 마음으로 관찰하기.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파악하고 그로 인해 진정 느껴야 할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던 불안함의 원인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우선 시작하는 일은 나를 미지의 영역으로 데려간다. 나에게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안겨준다. 그리고 그 감정을 바탕으로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일과 상황을 판단하는 인지적인 사고의 회로를 보여준다. 그래서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여러분의 시작을 응원한다. 삶의 어느 시점에서든 시작을 만난다면 격하게 들뜨는 것을 이해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들뜨는 마음을 억누르고 싶은, 그 마음도 이해한다. 폭발할 것 같은 그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두려움과 불안함마저 느끼는 것도 참으로 이해한다. 그때 잠시 멈추고 내가 무엇을 시작하고 있는지, 가장 설레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것이 불안한지 잠시 바라보면 어떨까. 이 상황에서 내가 당장할 수 있는 일을 알고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나면 이제부터는 행동이다. 그저 하는 것. 한 걸음을 떼는 것. 그 한 걸음을 떼기 위한 방향잡기와 동기부여에 대한 이야기, 시작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살펴보는 일. 첫번째 의도인 시작하기의 열쇠는 사실 관찰이었다.


안녕하세요. 다들 가을을 잘 맞이하고 계시는지요? 여러분들의 가을에 마주할 새로운 모든 시작을 응원합니다. 배숙 끓이기, 떨어진 낙엽으로 하트만들기, ... 모든 시작을요!


팟캐스트 링크 https://podbbang.page.link/aUKVNQcyVM7mWG6n7

유튜브 팟캐스트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gAoxUsijiCkyX1KVDnt1L9RsXdB1E_nb&si=pxWxaHUXsWrXYy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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