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의도 아주심기와 갈아 심기
아주심기와 한때심기라는 말이 있다. 아주심기라는 용어를 영화 리틀포레스트에서 처음 들었을 때 신선하고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미국에 정착한 지 고작 5개월 남짓한 지금 아주 심는다고 하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아주심기를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도착한 아가 덕분에 이곳이 꽤나 안정적으로 느껴진다. 내게 단단해진다는 것은 한 곳에 완전히 정착하거나 옮기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다녀도 변하지 않는 중심을 갖는 것. 계속해서 정착해야 하는 상황에도 내 안에 뿌리내릴 씨앗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내가 정한 단단함의 방향이다. 그럼에도 아주심기를 하고자 했던 것은 적어도 뿌리내리고 있는 동안의 안정감이 주는 위안, 새로운 뿌리가 뻗어갈 수 있도록 하는 방향성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 옮겨갈 때에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면 그뿐. 내 안에 씨앗을 만들어 내는 단단함이 나의 든든함이다.
'아주심기'는 정식(定植·planting)이라고도 하는데 더 이상 옮기지 않고 완전하게 심는다는 의미이며 구체적으로는 하우스 등에서 키운 식물을 밭에 옮겨 심는 것이다. 아주심기와 같이 쓰이는 다른 용어로는 옮겨심기, 한때심기, 갈아 심기 등이 있다. '옮겨심기'는 이식(移植)이라고 하며 척박한 곳에 있는 묘목이나 모종이 잘 자라도록 단순히 자리만을 바꾸어 심는 것이다. '한때심기'는 가식(假植)이라고도 하며 옮겨온 농작물을 다시 옮겨심기 위해 임시로 잠깐 땅에 묻어두는 것이다. 밭에서 캔 묘목을 마르거나 얼지 않도록 잠시 심어두는 것. 마지막으로 분갈이라고도 하는 '갈아 심기'는 꼭 농사용은 아니지만 중요하다. 왜냐하면 분 속에 난초 등을 너무 오래 심어 놓으면 생장력이 떨어져 죽게 되기 때문이다. 식물을 키우는데 살아나고 죽는 것은 한 가지 원인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당수가 적정 시기에 갈아 심지 않아 죽게 된다고 하니 갈아 심기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식물의 뿌리는 뿌리털에서 가장 활발하게 수분과 양분을 흡수한다고 한다. 오래되면 뿌리가 뒤엉켜 분 속에 가득 차게 되고 새로운 뿌리가 뻗어갈 여유가 없게 된다. 생육에 필요한 수분과 양분이 충분히 흡수되지 못해 쇠약해지고 뿌리의 숨통도 막혀 더 이상 거름을 주어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갈아 심기를 하면 생육에 필요한 새로운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다. 보통 1년에 한두 번 갈고, 적기는 봄에 꽃이 진 후나 늦가을이다.
더 경남뉴스 [귀농인이 알아야 할 농삿말] 아주심기와 한때심기(1)에서 발췌 (정창현, 2022)
한국에서 나의 가구들과 작은 짐들이 도착했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필요한 물건만을 가지는 것의 미덕을 배우는 시대 이기는 하나, 나의 물건들은 여전히 위안이 된다. 내 물건이 있는 나의 집은 아주 큰 위안이 된다. 익숙한 가구들, 이불, 옷가지, 그리고 식기들을 보니 '이곳이 나의 집이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 하루를 가득 채우는 작고 큰 물건들이 소중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주 작은 것 하나조차도 그냥 있는 것이 없었다. 각자의 쓸모와 이야기들을 가진 것들.
단단해지는데 또 필요한 것은 음식이다. 임신을 하고 보니 그때마다 필요한 영양소가 달랐다. 그 영양소들을 채워주는 음식이 당기곤 했는데 캐슈너트과 강황이 가득 들어간 인도카레가 너무나 먹고 싶었고, 마늘과 올리브오일이 가득한 파스타가 먹고 싶었다. 번외로 아주 시원한 냉면과 때때로 카페인이 그리웠다. 무엇보다 고향의 맛. 소꼬리 갈비탕, 소갈비찜, 돌솥비빔밥을 먹고 싶었는데... 이건 어떻게 채워질 수가 없었다. 임신초기의 체력은 상상 그 이하였다. 심지어 출퇴근을 하지 않는데도 이렇게나 힘들다니. 출퇴근하는 임산부들이 정말 진심으로 존경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한식이 너무나 그리웠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못했던 어느 날, 어머님이 사랑으로 한국음식을 잔뜩 만들어서 보내주셨다. 음식들을 정리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렇게 사랑으로 키운 아들을 나에게 사랑으로 다시 보내주셨다는 것. 진심으로 감사했고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품고 있자니 책임감과 사랑이 공존한다. 그리고 이 일을 해낸 모든 어머니들이 새삼 다른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가족들의 지지는 아주 멀리서도 사랑으로 전달된다. 임신 소식을 들은 가족들의 축하와 꽃, 어머님의 음식, 그리고 한국에서의 연락들. 오래전부터 계획했지만 타이밍이 정말 좋게도 우리 가족들이 한국에서 방문하기로 했다. 쉽지 않은 임산부 체력이지만 가족들이 오는 소식에 한편 설렌다. 가족들이 오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게스트룸을 준비해 두었다. 성인이 되어 가정을 꾸린 후 원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얼마나 드물고도 감사한 일인지 알기에 조금은 힘들고 어려울 일들을 극복해내보려 한다.
그리고 나는 글로 단단해진다. 가장 쉬운 방법일 공부로 단단해진다. 육아 서적을 주문해서 공부하고 관계에 대한 책들을 읽는다. 어쩌면 직접 경험하며 배우는 것이 사실 가장 어렵다. 그래도 해야 하는 것,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것은 결국에는 그곳을 지나가는 것. 경험하며 배우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도 어려운 방법이다. 그렇지만 가장 재미있다. 산부인과 병원에서 준 페이퍼들을 공부하며 입덧에 좋은 음식, 가진통과 진진통, 출산에 도움 되는 자세, 아기 예방접종 등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겁이 났다. 그럴땐 책을 덮고 쉰다. 혹은 이미 경험한 자와 만나 수다를 떤다. 꼭 직접적으로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내 옆에 있다는 것이 큰 버팀목이 된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끈끈함이 곧 응원이 된다.
나를 다시 심는 농사꾼이 되기에는 아직 배울 것이 많다. 그래서 내가 지금 아주심기를 한 것인지 옮겨심기를 한 것인지, 아니면 한때심기나 갈아 심기를 해야 하는 것인지 찾아가는 중이다. 여름이 지고 가을으로 가는 지금. 나는 어쩌면 아주심기를 위해 건강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곧 시작될 늦가을에 해야 할 분갈이를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뒤엉킨 뿌리를 정리하고 새로운 뿌리를 가득 채울 공간을 만드는 작업. 뿌리의 숨통을 트여주는 분갈이, 갈아 심기를. 그래서 가득 주는 거름을 잔뜩 머금을 수 있도록 말이다.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방향을 정했다는 것이다. 갈아 심기의 아주 적기인 늦가을을 기다리며.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은 지금 무엇을 심고 있나요? 그리고 어떤 심기를 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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