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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Jul 19. 2019

노후에도 지속가능한 집밥

삶의 비용 최소화, 나눔 실천의 마지막 주거 공동체


나는 노후에도 지속가능한 집밥을 꿈꾼다. 지금은 처부모를 모시며 아내랑 네 식구가 살고 있지만, 머지않아 둘만 남을 것이다. 큰 집에서 두 명이 사는 것은 낭비다. 둘 만을 위한 요리도 비효율적이다. 노후는 비용을 최소화한 새로운 주거 대안이 필요하다. 실버타운이 있지만 꽤 비용이 들고, 그런 방식이 맞는지는 엄격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제 100세 시대다. 정년 은퇴 60세에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 누구나 노후를 얘기한다. 돈이 있어야 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돈을 벌려고 해도 몸이 안 따라주고, 건강하려면 돈이 들어야 한다. 몸에 좋은 음식은 다 찾아다니고, 좋은 거라면 다 취하는 시기다. 인생의 종점에서 하지 못할 것이 없다.


나와 아내는 55세로 정년 은퇴가 5년 남았다. 아내는 간호사로 사학연금 가입자라, 연금만 보면 나랑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나도 국민연금 1세대로 1988년부터 꾸준히 부어 왔다. 하지만 최근 연금 안내서에는 65세 때 받을 연금이 117만 8천원이다. 40년 이상 남은 노후를 생각하면 막막한 기분이다.


지금 모시고 사는 장인 장모님의 노후 재정은 정말 초라하다. 노령연금으로 두 분 합쳐 40~50만 원 수준이다. 나머지는 1남 4녀 자식들의 매달 정기 용돈을 합쳐야 겨우 살아갈 정도다. 물론 의료비, 생활비 등은 우리 부부가 부담하기에 그렇게 어려움이 없어 보일 뿐이다.


먹거리는 더 문제다. 노인을 부양하다 보면 그들을 눈여겨보게 된다. 소화력이 떨어지고 틀니로 지내다 보니 먹거리에 한계가 있다. 건강식품에 현혹되는 건 여전하시다. 장모님(79)은 위가 약해서 밀가루 음식은 거의 못 드신다. 장인어른(85)은 오랫동안 당뇨병을 관리하고 계신다.


한때 장인어른은 좋다는 나무뿌리들을 모아놓고 우려 드시곤 했다. 나는 장모님께 버릴 것을 권유했다. 또 틈만 나면 라면을 끓여드신다. 당뇨병 환자가 맞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배우자가 없다면 스스로 해 먹기는 불가능하다. 결국 외식에 의존하게 되고, 염증은 더 쌓여만 갈 것이다.



요리는 노후에 절실해진다. 건강을 위해서도 존재감 때문에도 남자의 요리는 노후에 빛을 발한다. 여성들은 노후에도 네트워크를 자랑한다. 장모님은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문화프로그램도 즐긴다. 여자들은 해 먹는 것도 자유롭다. 그저 주방에서 조금 움직이면 된다. 그렇게 많은 열량의 요리가 필요 없다. 그저 자신을 위한 한 끼 요리면 충분하다.


내가 40대 후반에 요리를 배운 것은 정말 다행이다. 요리를 전담한지도 7년째다. 요리는 노후 대비에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직접 요리를 해 먹음으로써 건강을 챙기고, 건강하니 요리가 더 가능해진다. 요리는 여자를 기쁘게 하는 능력이기에 무시당할 이유도 없다. 오히려 관계는 더 돈독해지고 배우자의 자원을 얻어 쓸 수 있다.


공동 주거형태 ‘셰어하우스’를 노후에 꿈꾸는 이유다. 7년을 거의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요리를 했다. 두 어르신 식사시간인 7시 20분경에 맞춰 만든 밥을 먹고 출근을 한다. 아내는 간호사라 늘 피곤하고 바쁘다. 설거지는 장모님께 맡긴다. 아침을 잘 먹는 게 건강을 지키는 지름길이라 여전히 믿고 실천하는 이유다.


요리는 이제 남자들 가까이에 와 있다. 최근 요리 학원에는 남자들이 많다. 은퇴 후 요리하는 남자들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맞벌이 시대에는 남자의 요리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요리는 아직 먼 길이다. 주방은 남자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디테일한 주방 도구들과 각종 양념, 꼼꼼한 요리의 전 과정을 수행해내기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지금은 인터넷만 켜면 무엇이든 검색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보이는 대로 요리는 안 된다. 정보는 간단히 얻을 수 있지만 경험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실제로 요리를 하고 축적해야 그 레시피를 얻을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체험으로 내 것을 만들 것인가가 핵심이다. 요리를 할 줄 아는 사람은 요리에 관한 실증적 스토리를 말할 수 있다.



명절이면 처 형제들이 우리 집에 모인다. 처남댁과 처제네 들이다. 맏이인 아내가 특별히 소집해서 모이기도 한다. 연중 두 번 있는 명절 때는 그냥 놀다 가기 바쁘다. 부모님 부양 문제와 소소한 얘기를 나눌 기회가 별로 없다. 그래서 깊은 얘기를 나누기 위해서 자리를 마련한다.


형제들의 모임은 나의 역할로 이어진다. 대개 모이는 인원은 15명 내외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숫자다. 메뉴를 결정하는 일은 늘 고민거리다. 잔치 음식으로 통하는 잡채는 꼭 넣는다. 고기류는 소불고기나 la갈비를 고민하게 된다. 한우 소불고기는 한번 양념해놓으면 해 먹기 편하고, la갈비는 가격 대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국은 소고기 메뉴가 준비될 경우 된장국 정도가 적당하다. 배추나 근대를 주로 이용한다. 된장은 속을 가장 잘 다스려주는 재료다. 나물이나 무침도 배치된다. 시금치와 취나물, 요즘 비름나물도 좋다. 무침으로는 아삭한 오이무침과 쌉쌀한 도라지 초무침도 별미다. 오징어를 데쳐 함께 무치면 식감을 더 즐길 수 있다.


의욕적일 때는 단호박 수프를 만들어 내놓기도 한다. 수프는 양식적인 요소로 입맛을 잡는데 좋다. 노란 단호박의 색감은 모임 자리를 근사하게 만든다. 나의 시그니처 메뉴인 치즈 계란말이는 여기서나 맛볼 수 있는 요리다. 완전식품 계란 요리는 우리 집에선 늘 빠지지 않는 메뉴이기도 하다.


한국 밥상에 김치는 빼놓을 수 없다. 작년 김장 김치가 꽤 먹을 만하게 익었다. 청각과 연근가루를 넣은 덕분에 김치 숙성이 늘 아삭함을 유지하는 이유다. 최근에 배추 3통을 절여 무친 겉절이나 때로는 나박김치를 준비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냥 풋풋함을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모임 가족들은 웃음꽃을 피운다.


후식은 사과나 참외 등 과일이 가장 무난하다. 그냥 아삭아삭 껍질째로 씹어먹는 게 좋다. 더운 여름철 수박도 푸짐하고 시원하게 먹을 수 있다. 같은 값이면 화채로 만들어서 내놓으면 손님의 품격이 달라진다. 화채는 계량스푼으로 동그랗게 떠서 담고, 남은 건더기를 면 보자기로 꽉 짜 국물로 담으면 효과적이다.


지금은 다 커버렸지만 어린 조카들이 있을 땐 딸기바나나라떼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일명 딸바라떼다. 냉동딸기와 바나나를 우유와 함께 고속 믹서기에 갈면 그만이다. 고등학생이 돼버린 조카들은 지금도 큰 이모부가 만들어준 스파게티와 피자를 입에 올리곤 한다.



요리는 공정에 따른 시간 배분이 중요하다. 오후 6시 30분 상차림 목표면 보통 점심 먹은 후 1시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딸바라떼는 냉동 시간이 필요한 만큼 아침에 미리 만들어둔다. 멸치육수를 내 된장국을 만들고, 나물은 살짝 데쳐놓는다. 초무침용 소스는 미리 만들어서 냉장고에 두면 숙성도 되고 작업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초무침용 소스는 고추장을 양념하면 된다. 다진마늘, 간장, 식초, 설탕, 들기름에 통깨를 손으로 으깨어 넣고 섞는다. 맛을 보고 취향대로 보완하면 된다. 때로는 단맛엔 올리고당, 신맛으론 레몬즙을 추가하면 미각을 더 살릴 수 있다. 매실액도 단맛과 새콤함을 추가하는 데 도움을 준다.


동일한 방식의 작업은 함께 하는 게 좋다. 데치는 작업, 볶는 작업, 무치는 작업을 감안해 재료를 손질해 두면 편하다. 소불고기 양념의 경우에는 보통 1kg 이상 재우는 만큼 계량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 시간도 1시간 이상 재우는 게 좋다. 재움 재료로 사과와 배가 무난한데, 키위와 파인애플은 고기를 금방 연하게 만들기 때문에 1시간 이내에 해 먹는 게 좋다.


잡채는 정성과 사랑이다. 잡채 요리는 족히 1시간 20분은 잡아야 한다. 6시 반 상차림이면 늦어도 4시 반엔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나는 장모님과 함께 만든다. 장모님은 시금치를 다듬어 데쳐 무치고, 내가 채 썰어주는 야채를 볶는 일을 담당한다. 돼지고기 밑간도 준비하고, 당면과 건목이버섯은 물에 불려놓는다.


잡채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당면 삶기는 내 몫이다. 당면은 간, 색깔, 식감을 한 번에 잡는 게 중요하다. 당면 500g 기준으로 물 1L, 다시마간장 140ml, 설탕 30g을 사용한다. 그러면 당면 삶기가 한 번에 가능하다. 센 불에서 해야 하고 삶을 때 뚜껑을 닫지 않는다. 국물이 거의 졸았을 때 약불에서 식용유를 넣고 재빨리 볶아주면 된다.


요리는 꼬박 5시간여 이상을 주방에서 보낸다. 칼질을 하고, 데치고, 삶고, 양념을 하고, 무치고, 간 보기까지 쉴 새 없이 진행된다. 문제는 상차림 시간에 맞추는 것이다. 요리한 음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매번 할 때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다.


7월 13일 토요일, 미국 처제네가 한국을 방문해 처 형제들이 친정인 우리 집에 모였다. 1박 2일 왁자지껄, 함께 먹고 마시며 회포를 풀었다.(청반바지에 녹색티 차림이 나)


요리가 끝나고 상차림은 처제와 아내가 주로 담당한다. 먹고 마시는 일은 모임에서 중요한 요소다. 처제와 동서들에게 우리 집은 훌륭한 거점이었다. 맛있는 음식과 홈시어터 영화, 커피머신 원두커피가 있는 집이었다. 지금은 다들 커버린 조카들이 어울려 놀던 놀이터였다. 함께한다는 것은 추억과 기억을 공유하는 공동체의 여정이다.


명절 때면 처 형제들에게 하는 얘기가 있다. 나중에 늙으면 함께 살자는 것이다. 서로 공동투자로 집 한 채 지어서 함께 세대를 이루며 사는 것이다. 거기에서 나는 집밥 요리를 담당하는 것이다. 지금도 명절 때면 내가 하는 요리로 음식을 즐긴다. 다들 맛있게 먹어준다. 장모님이 계셔도 친정의 손맛은 형부이자 매형인 나의 담당이다.


처남과 처제, 우리 해서 세 세대 정도면 딱 적당하다. 여섯 명의 요리는 한 끼에 합리적인 규모다. 지금은 한 끼 만들면 네 식구가 먹고 남는 경우가 많다. 여섯 명이면 한 끼로 딱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끼니 별로 메뉴를 돌려가면서 즐기면 맛도 좋고 영양도 잘 챙길 수 있다. 특히 아침을 잘 먹는 것이 중요하다. 점심, 저녁은 가볍게 즐기면 된다.


’셰어하우스’라도 세대별로 독립 공간을 보장하면 된다. 식당은 지장이 없을 정도로 한 개로 만들고, 방과 거실을 별도로 구성하면 된다. 단독주택으로 지으면 자연친화적으로 꾸밀 수도 있다. 비용은 공동으로 부담하기에 서로 최소화할 수 있다. 먹는 비용도 마찬가지다. 처 가족들이라 문화적 충돌이나 갈등도 친 가족 형태보단 적다. 자매들 간 친화력과 조정력은 장점이다.




셰어하우스의 전신은 ‘게스트하우스’다. 일본에서 처음 들어왔고, 2000년대 들어 기업형 셰어하우스 형태가 나타났다. 한국에서 셰어하우스 개념은 2010년 이후 등장했다. 청년 주거문제에 대한 첫 대안으로 나왔다. 높은 임대료와 생활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외국인이 주로 거주했던 것이 게스트하우스라면, 한국의 셰어하우스는 주로 청년과 대학생이 입주자다.


셰어하우스는 ‘룸 셰어’와 차이가 있다. 룸 셰어는 개인 몇 명이 모여 아파트를 같이 임대 사용하는 형태다. 최근에는 분야별로 특화된 콘셉트 중심의 셰어하우스도 등장하고 있다. 취미 생활을 공유하는 취미 중심의 하우스, 창업이나 기술 전문가를 대상으로 하는 비즈니스 하우스, 미혼 여성들을 위한 하우스 등이 있다.


대부분의 셰어하우스는 기본적인 가구, 가전제품, 인터넷 등 생활에 필요한 조건들을 공유한다. 개인용품만 갖고도 생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인 공간의 경우에도 개인 1실, 2인 1실, 다인 1실 등 여러 경우가 있어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공유, 나눔으로 통하는 ‘셰어(share)’는 이제 대세다.


※ 요리 음식 사진들은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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