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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분 뛰고 바닥난 50대 몸뚱이

고비마다 위안이 된 유산소 운동의 꽃 달리기

by 강상철

오랜만에 달렸다. 얼마만의 달리기인가. 2014년 7월에 5km 달린 것이 마지막이었다. 2012년부터 기록된 운동일지를 들춰봤다. 3년 만에 달린 것이다. 감회가 새로웠다. 그렇게 달리기는 내게서 멀어져 갔다. 달리기는 고비 때마다 나를 단련시켰다. 2003년 현장 활동이 힘들 때 마라톤을 시작했다. 뛰면서 나를 일깨웠고, 일깨워진 만큼 또 달렸다. 뛸 땐 늘 힘들었지만 뛰고 나면 위로였고 위안이었다.


마라톤도 2006년 30km 완주를 마지막으로 내게서 멀어졌다. 그로부터 6년 후 일상의 관성을 걷어내고자 다시 달렸다. 몸도 맘도 지쳐가던 때였다. 그땐 주 2~3회 5km로 꾸준히 달렸다. 달리기는 결코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코어가 약해 누구보다 힘들었지만, 결과는 늘 나를 단련시켰다. 육체를 일깨웠고 삶의 의지를 확인시켜줬다.


이번 달리기는 최소 50분~최대 1시간 목표로 잡았다. 3년 만에 뛰는 목표로는 상당한 수치다. 그동안 웨이트를 꾸준히 했지만 달리기는 또 다르다. 러닝의 꽃 마라톤은 연습한 자만이 허락되는 종목이다. 오늘의 속도는 쉼 없이 달리는 게 목표다. 간단히 스트레칭을 하고 뛰기 시작했다. 중랑천 변은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다. 맘만 먹으면 걷고 달리기는 최고의 조건이다.


한때 달리기를 예찬했다. 물론 지금도 다르진 않다. 다만 지금은 종합적인 안목으로 바라본다. 뭐든 과욕은 금물이다. 마라톤도 오버 레이스가 치명적이다. 지인 중에 울트라마라톤까지 갔다가 심장에 무리가 와서 쉬고 있는 선배도 있다. 활성화 산소가 노화를 촉진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10분을 달리자 몸이 데워지고 발바닥 압력이 전해온다. 몸은 아직 햇빛을 즐기고 있다. 바람은 러너에겐 반가운 손님이다. 등진 바람이 뛰기엔 좋지만, 안는 바람도 나쁘진 않다. 시원함을 주기에. 20분이 지나자 무릎에 통증이 느껴진다. 3년 동안 무릎에 오늘 같은 압력은 처음이다. 몸의 중력이 모두 무릎에 쏠리는 것 같았다. 특히 왼쪽 무릎이 더하다. 스쿼트 할 때 왼쪽 무릎이 늘 좀 더 불편했었다.


결국 25분에서 몸을 돌리고 말았다. 5분만 더 달리면 최대 목표에 갈 수 있었는데, 아쉬움을 뒤로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문제는 돌아가는 길이다. 무릎에 통증이 온 이상 이제부터가 투쟁이다. 지난날 경험이 알고 있었다.


오늘은 달리는 사람이 별로 없다. 달린 지 35분이 지나면서 멈추고 싶었다. 간혹 마주 오는 러너가 위안이었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 이리라. 동지의식은 이토록 소중한 것이다. 혼자서는 자유를 누리지만 인내까진 얻진 못한다. 함께 하기에 인내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온갖 바퀴 달린 것들이 부러웠다. 자전거, 롤러스케이트가 휙휙 바람을 안고 지나갔다. 40분이 지나자 몸은 벌써 지쳐있었다. 그 좋던 햇빛도 나를 괴롭혔다. 바람은 더 이상 불지 않았다. 땀이 모공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편안함이 너무 떠올랐다. tv를 보고, 책을 보고, 요리를 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에 겨운 일인가. 그 힘든 웨이트 운동도 지금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달리기는 지난한 고통을 안겨준다. 달려온 것만큼 달려야 하는 고통이다. 웨이트 운동은 순간적인 고통만 잘 참아내면 된다. 심장이 달려있음이 느껴졌다. 심장도 함께 달리고 있음이다. 몸 안의 모든 세포와 장기들이 원심력과 중력에 저항하고 있음이다.


결국 반환점을 돌아 50분 달리기를 끝마쳤다. 달리기는 늘 나를 시험 들게 한다. 나는 러닝 세포가 아직 살아있음을 확인했다. 여전히 무릎 세포에 남아있는 트라우마도 확인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지금 몸은 정지했지만 맘은 아직도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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