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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Oct 30. 2022

자연에서 우리가 회복되는 이유

이분법으로 벗어나 다양성으로.

자연 안에 있으면서 회복되었다고 말하면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결이 되었냐고 물었다. 나는 설명할 필요를 느꼈다.


우리는 학습을 시작하면서 A가 아니면 B를 배우게 된다. C라는 절충안을 배우기도 한다. 이 것은 우리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할 때 가만히 지켜보는 힘을 방해한다. 유연한 사고를 방해한다.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치유와 회복을 방해하고 혹은 나의 다양하고 복잡한 마음에 대한 수용을 어렵게 하면서 아프게 한다.


자연에게는 이분법이 없다. 큰 파도와 작은 파도 태풍과 솔바람에게 옳다 그르다를 얘기하지 못한다. 얼마만큼 이 큰지 작은 지도 상대적이다. 몸을 스쳐 지나가는 빛과 바람은 몸 곳곳의 감각을 깨운다. 내가 따뜻하다 시원하다고 느끼는 곳 이외에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며 감각을 일깨운다. 온몸으로 다양성을 경험한다.


요가에서도 마음 챙김에서도 에고를 내려놓으라고 한다. 작은 자신 안에 머물 때의 편협함과 말은 하고 있으나 타인과의 연결성이 떨어질 때 외로움은 괴로움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에고를 충분히 알아야 내려놓을 수 있다. 그렇게 내려놓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자연 안에 있으면 내려놓아진다. 자연의 거대한 힘에 압도되는 죽을뻔한 서핑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자연의 다양한 감각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나 너머의 것을 느끼게 된다. 거대한 에너지를 보게 된다. 내가 아는 것 이상의 것을 통해 내려놓게 되고 쉬게 된다. 그리고 새로운 빛을 따라 나아가게 된다.


문제가 자연 안에 있다고 단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회사에 가면 늘 같은 종류의 사람이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비슷한 남자 친구들을 겪는다. 우리는 내 안에 가진 트리거 포인트가 옅어질 때까지 반복할 뿐이다. 자연은 트리거 포인트를 넘어 삶을 순환시킨다. 내가 트리거 포인트를 다시 한번 용감하고 창의적으로 대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또는 완전히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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