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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Oct 24. 2022

#배움

삶과 시간에 대한 신뢰.

나는 발리에서 치유만 일어날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불편한 상황이 아주 많았고 나의 숨겨졌던 불안한 마음과 현실적인 문제들을 더 숨김없이 보아야만 했다.

외로움에 망설이는 나, 매일 비워져 나가는 통장, 심지어 카드복제 사건까지 겪었다. 한가로움 속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마주 할 때마다 나의 감정들과 여운도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이런 감정도 가지고 있었나 싶을 때가 많았다. 두 달 정도는 스쿠터 타는 일도 늘 긴장되었고, 서핑하러 가는 아침은 설레는 만큼 두렵기도 했다. 파도가 크고 힘이 좋은 만큼 그 안에 빠질 때면 나오기 힘들었다. 관광지인 이곳에서 무수한 웃음과 새로운 만남들 사이에서 나의 영역을 지키는 법을 배우느라 애를 썼다. 단 며칠의  여행이 아닌 데다 집중하고 싶은 요가와 서핑이 있었기에 컨디션 조절 에너지 조절은 늘 필요했다.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기처럼 눈치로 배운 영어.

파도에 뒹굴고 해안가 바위에 긁히며 온몸으로 배운 서핑.
원숭이처럼 보고 따라 하고 넘어지고 굴러가며 배운 많은 것들이 있었다.
고백하자면 햇빛에 그을리고 서핑하면서 멋있어지고 싶어서 온 건데 그냥 나는 아기였다. 몸도 마음도 언어도.

그렇게 실수와 실패에 익숙해지며 몇 개월이 흘렀을 때, 서핑과 스쿠터 실력이 아주 조금 늘었다. 실력이라기보다는 서핑과 스쿠터 라이딩이 편해졌다. 마음도 건강해졌다. 마음의 성숙과 지능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삶과 시간에 대한 신뢰가 생겼다.


배움이라는 것은
두려움, 실수, 좌절과 흥미로움, 설렘, 재미의 ‘뒤섞임’을 느끼고 시도해보고 지켜보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니 배움이란 단어가 편해졌다.
배움은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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