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오래된 식물원을 다녀왔다. 구석구석 보물들로 가득했다. 덩굴식물인 푸밀라가 하우스의 원목 천장을 타고 오종종하게 모여 있는 모습에 한참을 넋놓고 서 있었다. 십수 년 뻗어올린 식물의 세월을 보고 있었다. 나무는 줄기의 둘레로 나이를 가늠할 것이고, 덩굴은 줄기가 뻗은 길을 되짚어 나이를 가늠하지 않을까.
살아온 길을 고스란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매력적이지만 때론 고통이기도 하다. 어지럽게 공중뿌리를 붙이며 오르는 것 같아도 나름의 질서가 보인다. 급경사를 만나거나 건널 수 없는 구렁 앞에서, 덩굴은 돌아갈지 질러갈지 고민한다. 그사이 덩굴은 더욱 깊어질 것이고 지난 길도 되짚어 갈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해질 것이다.
십수 년간 덩굴의 세월을 키워 올린 식물원의 늙은 여주인은 여름이 가기 전 문을 닫는다고 했다. 그녀의 얼굴에서 나름의 질서를 세우며 살아왔을, 까마득한 덩굴의 세월이 읽혔다. 그녀의 눈빛에서 오랫동안 잘 숙성된 토양의 강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여주인이 잘 키워달라며 건넨 율마 한 포트를 집으로 가져와 분갈이하고 물을 듬뿍 주었다. 생명의 하루가 다시 시작된 셈이다. 줄기를 살짝 흔드니 율마의 향이 처음인 것처럼 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