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피스토 Mar 14. 2022

묘비명이 된 이름표



식물의 이름표는 일종의 전입신고서와 같다. 나는 주로 학명과 구입날짜, 구입처 그리고 구입 가격을 이름표에 적어놓는다. 얼마 안 되는 정보지만 식물을 키우는 데는 꽤 유용하다. 사실 언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있는 구입날짜보다 흥미로운 건, 구입 당시의 값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몇 년 사이 비싼 몸값이 된 식물도 있고, 비싸게 산 희귀식물이 동네의 흔한 ‘화원식물’이 된 경우도 있다. 


그나마 몸값을 떠나 나를 뿌듯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구입한 날짜가 오래된 만큼 대품이 되어 있을 때다. ‘운 좋게 잘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꼼꼼하게 돌보지 못할 때가 많으니, 내 능력이라기보다는 식물의 생명력 덕이다. 


내가 떠나 보낸 식물이 너무 많다. 하나둘 늘어나는 식물의 수만큼 주인 잃은 이름표도 따라 늘었다. 아쉬울 새도 없이 바쁜 일상을 지내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심하게 꽂아둔 이름표에 놀라고 만다. 더 이상 꽂을 자리가 없는 것이다. 


식물의 이름표는 묘비명이 되어 있고, 나는 식물의 ‘위령비’를 세우고 있었다. 누군가 이 광경을 본다면 식물 사랑법이, 영화 <미저리>의 주인공만큼이나 편집증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오해다. 오히려 식물을 애도하던 위령비는, 식물 지키는 장승배기가 되어 매일 아침 내게 분무질을 재촉하고 있으니까. 그때만큼은 고분고분 물시중 드는 식물집사가 되어야 한다.  


이전 04화 식물의 언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