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의 이름표는 일종의 전입신고서와 같다. 나는 주로 학명과 구입날짜, 구입처 그리고 구입 가격을 이름표에 적어놓는다. 얼마 안 되는 정보지만 식물을 키우는 데는 꽤 유용하다. 사실 언제 이곳에 왔는지 알 수 있는 구입날짜보다 흥미로운 건, 구입 당시의 값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몇 년 사이 비싼 몸값이 된 식물도 있고, 비싸게 산 희귀식물이 동네의 흔한 ‘화원식물’이 된 경우도 있다.
그나마 몸값을 떠나 나를 뿌듯하게 하는 것이 있다면, 구입한 날짜가 오래된 만큼 대품이 되어 있을 때다. ‘운 좋게 잘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꼼꼼하게 돌보지 못할 때가 많으니, 내 능력이라기보다는 식물의 생명력 덕이다.
내가 떠나 보낸 식물이 너무 많다. 하나둘 늘어나는 식물의 수만큼 주인 잃은 이름표도 따라 늘었다. 아쉬울 새도 없이 바쁜 일상을 지내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심하게 꽂아둔 이름표에 놀라고 만다. 더 이상 꽂을 자리가 없는 것이다.
식물의 이름표는 묘비명이 되어 있고, 나는 식물의 ‘위령비’를 세우고 있었다. 누군가 이 광경을 본다면 식물 사랑법이, 영화 <미저리>의 주인공만큼이나 편집증적이고 그로테스크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오해다. 오히려 식물을 애도하던 위령비는, 식물 지키는 장승배기가 되어 매일 아침 내게 분무질을 재촉하고 있으니까. 그때만큼은 고분고분 물시중 드는 식물집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