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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피스토 Mar 13. 2022

식물의 언어

푸밀라의 새 잎이 붉다. 식물은 작은 변화에도 신호를 보낸다. 좋든 안 좋든 끊임없이, 누가 듣든 말든 상관없이 말이다. 푸밀라의 새 잎은 항상 녹색이었는데 무슨 일일까? 아마 식물등을 새로 달아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식물등은 푸밀라 가까이에 놓여 있다. 햇빛과 유사한 파장을 가진 조명이니 푸밀라가 식물등을 햇빛으로 착각하고 붉은색 파장에 반응하여 붉은색을 내는 모양이다. 


식물은 말이 없다. 다만 빛과 물과 흙을 양분 삼아 자신의 상태를 잎과 꽃으로 발화할 뿐이다.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식물이 나에게 ‘건강한’ 시그널을 보내는 동안에도, 식물벌레가 잎 뒷면에 붙어 잎의 진액을 빨아먹고 있을지 모른다. 식물의 잎이 누렇게 뜨는 것은 한참 후의 일일 것이다. 그때는 이미 늦었다. 


다행히 식물은 돌려 말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식물이 말하는 대로 들을 준비만 하면 된다. 푸밀라의 새 잎에 붉은색이 돌 때, 식물에게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들여다보는 일 정도면 충분하다. 녹색의 푸밀라가 오색마삭줄처럼 무지갯빛을 내고 있는데도 모르고 지나친다면, 나는 그것보다 더 큰 것을 놓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식물의 언어에 귀 기울이는 일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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