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이 어항물을 통과한 빛을 받아 잎을 내는 중이다. 빛은 물을 통과하면 부드러워진다.
빛이 부드러우면 열대식물은 잘 큰다. 직사광선보다는 유리를 통과한 빛이 부드럽고, 유리를 통과한 빛보다는 물을 통과한 빛이 더 부드럽다. 빛은 경계를 통과할수록 세력이 약해지지만, 빛의 성질은 통과한 만큼 온순해진다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
이곳 북향의 식물들은 그 약하고 온순한 빛을 받아먹고 산다. 그러다보니 식물이 빛이 들지 않는 사각지대에 며칠만 놓여만 있어도 시름시름 앓다 죽어버린다. 오늘도 나는 곳곳에 주렁주렁 조명을 매달아 여러 갈래 빛의 길을 만들어놓는 중이다. 길 잃지 않고 찾아갈 수 있게 불 밝히는 점등인의 심정으로, 식물이 잎 내는 길을 따라 딱 반보(半步) 앞서서 걷는 중이다.
식물이 스스로 빛동냥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게, 식물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해, 딱 반보 앞서 불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