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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세드 Jul 19. 2019

당신의 예민함을 나는 사랑했다.

나의 연인은 예민한 사람이었다. 

모든 면에서 예민하려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감정의 표현과 느낌, 책과 그림, 영화, 음악, 자연, 음식, 그리고 심지어는 잠까지. 

좋은 카페는 좋은 커피와 더불어 어울리는 좋은 음악을 선정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던 사람이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며 두 시간 남짓의 영화 한 편을 고르는 데에 삼십 분을 투자하는 사람이었다. 공을 들인 선택 후 본 영화가 마음에 들면, 그 뒤 일주일의 시간을 뿌듯함과 행복에 차서 보내곤 했다. 

직접 찍은 사진 중 배경화면을 오랫동안 고민하더니 하나의 배경화면을 3년 동안 유지했다. 

아침에 일어나 차 한잔을 마셔도 차받침과 찻잔, 숟가락과 설탕, 차 주전자를 준비했고, 가끔 우유나 레몬을 곁들이기도 했다. 티백보다 찻잎을 사랑하는 당신이었다. 당신이 티백으로 차를 먹을 때는 굉장히 힘든 날이구나 나는 짐작하곤 했다. 

어느 날은 굉장히 마음에 드는 시집을 읽었는지 들뜬 표정으로 나에게 달려와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들뜨고 설렌, 다급함이 섞인 표정과는 다르게 그의 입에서 단어들이 꾸물거렸다. 나는 간질간질한 기분을 참으며 기다렸다. 단어들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TV에서 본, 여러 크기의 구멍이 뚫린 바구니가 겹겹이 쌓여 동전을 구분해 내듯이, 그의 마음속에서도 여러 개의 바구니가 있어 말을 고르고 골랐을 것이다. 

우리는 왜 헤어졌을까. 내가 당신의 예민함을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해서일까. 

잠에 지나치게 예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당신의 그 표현들이 나를 향하는 것이 두려워서였을까. 

조목조목, 약간 달뜬 말투로 나에게 당신의 아픈 감정을 이야기할 때, 나는 그것을 참을 수 없었을까.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끝나고 15분을 내리 울던 당신의 옆에서, 나는 내 존재를 지우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의 예민함을 사랑했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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