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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보호자가 갖춰야할 자세

먼저 숙이고 인사할 줄 알자

by 쳄스오모니

어느날 주민센터를 갔는데, 딱 봐도 도움이 필요해보이는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 분은 이름도, 주소도 쓸 줄 몰랐고 기초수급자 서류를 신청하는 것 같았다.

다행히 그를 아는 사람들이 있었는지, 주변 사람들이 서류를 작성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다 몇십분 뒤 연락을 받은 그의 가족이 오고, 나도 내 볼일을 마치고 주민센터를 나왔을 때 그의 품에 강아지가 안겨있는 걸 봤다.

주민센터에서 내 표정이 이랬다. 근심 반 걱정 반


사실 짜증이 났다. 이름도 쓸 줄 모르고, 말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사람이 강아지는 과연 잘 키울 수 있을까.

강아지 키우려면 돈이 많이 드는데, 끝까지 키우기나 할까. 저 강아지들은 제대로 놀 수는 있는걸까.

"하, 제발 강아지는 여유있는 사람들이 키웠음 좋겠다."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그 분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돌아다닐 땐 옆에 늘 강아지가 있었는데

여유있게 느릿느릿, 리드줄을 손에 잡고 서서히 걷더라.

아. 한 집에 산지 오래된 가족이구나.


그렇게 산책하고 몇번을 마주쳤는데,

어느날 그 분이 '안...안..녕..하..세...요' 라며

나와 우리 강아지한테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몇번이 쌓이고 쌓여 이젠 나도 '안녕하세요'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인지하는' 사이가 됐다.

산책하다 보면 여러 견주, 보호자들을 만나게된다


아마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저 사람이 어떻게 강아지를 키워."

그런데, 그는 그 나름대로 매일 같이 산책을 했고, 강아지는 그와 속도를 맞춰 산책하는 법을 배웠으며

다른 강아지와 보호자들에게 다가가 인사할 줄도 알았다.


그가 내게 느리지만, 또박 또박 건넨 '안녕하세요.'는 "혹시라도 저나 저의 강아지에게 일이 생기면 옆에서 한번만 봐주세요." 라고 들렸다.

주민센터에서 그를 둘러싸고 도와줬던 사람들도 아마 다 이런 것을 겪었겠지.


살다보면 나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아무리 내가 돈이 많고, 잘나도 그렇다. 어떤 부분에선 남들에겐 나도 불완전해 보일거니까.

온전하지 않은 나는 도움이 필요한 그 순간을 위해, 또 내 강아지를 지키기 위해 누군가에게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건넨 적이 있던가.

강아지를 키울 자격. 그 자격이란건 남이 주는게 아니라 강아지 판단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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