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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Jul 21. 2023

너를 통해 나를.

그림책 공부하는 아빠 #4

"아빠. 어제 힘들었잖아.."


아이들과 함께 등원하는 길이었다. 킥보드를 타고 가던 하이미가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슬쩍 말을 건넨다. 나는 그 말에 멋쩍게 웃는다. 


"하하..맞아. 하임아. 어제 아빠가 좀 힘들어 보였지."


전날 하성이가 자기 요구를 들어달라며 울고 떼를 쓰는 순간이 있었다. 그때 하임이는 아빠가 보인 반응과 아빠 얼굴에서 드러나는 표정과 몸짓, 손짓, 음성 등을 가지고 아빠가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했나 보다. 하임이는 아빠가 하성이를 용납해 주고 수용해 주기 버거워한다고 느꼈던 것이다. 그리고 하이미는 아침 등원길에 어떤 마음에서 불쑥 저 말을 꺼낸 것일까? 어제의 아빠를 이해하고 있고, 공감하고 있다는 표현이었을까? 나는 하이미의 저 말에 작은 위로를 얻었다. 마치 아빠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빠에게 힘든 순간이었다는 걸 본인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고,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는 것만 같았다. 어제 아빠가 힘들어 보인 것 때문에 자기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대상관계이론에서 말하는 건강한 사람이란 '대상항상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 대상항상성이란, 한 대상에게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을 말한다. 즉, 완벽(perfect)이 아니라, 일관성(constant)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에게나 자기 자신에게 대상항상성을 가지는 것은 크고 작은 일들에 흔들림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자기도 타인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모두 있고,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는 생각, 때론 넘어지지만 그럼에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일관된 마음이 바로 대상항상성이다. 이는 안정감 있는 내면을 가지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대상항상성을 기르는 데 중요한 것은 양육자, 권위자의 일관성 있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이 일관성 있는 태도가 가진 중요성을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 있다. 내가 일하는 곳에 원어민 교사들이 있다. 그들 중 한 명의 수업참관을 해보면 아이들이 안정감 있는 태도로 수업에 임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에너지가 넘치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차분하게 수업에 집중할 수가 있는 것은 바로 교사가 보이는 일관성 있는 태도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실 안에서 정한 규칙에 의해 포인트를 부여할 때 그는 모두 함께 이해하고 있는 기준에 따라서 적절히 포인트를 지급한다. 포인트를 적게 받은 아이가 서운해하거나 속상해해도 그것 때문에 마음이 흔들려서 포인트를 더 주는 일은 없다. 속상한 마음을 공감해 주지만 규칙은 꼭 지킨다. 교사가 정한 rule(규칙)과 boundary(경계) 안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수업에 참여하고 감정적인 반응은 잘 보이지 않는다. 만일 교사가 포인트를 더 받지 못한 아이가 안타까운 마음에 규칙을 어긴다면 아이들은 더 받은 포인트 때문에 잠깐 즐거울지 몰라도 마음에는 불안이 자리 잡게 된다. 언제 또 선생님이 규칙을 어길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선생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영어를 잘 알려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야. 내가 포인트를 더 받지 못한 것은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어. 다음에 더 잘하면 되니까.' 


조던 스콧이 글을 쓰고 시드니 스미스가 그린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라는 그림책이 있다. 말을 더듬는 아들과 아들을 가만히 바라봐주며 새로운 시선을 갖도록 도와주는 아버지가 등장하는 그림책이다. 

말을 더듬는 아이가 맞이하는 아침은 고요하기만 하다. 자기가 내는 소리들로 인해 사람들로부터 돌아오는 반응이 아이의 입을 다물게 한 모양이다. 말없이 학교에 갈 준비를 하는 아들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시선이 느껴진다. 아버지는 아들을 학교로 데려다주면서 애써 기운 내라는 말도, 오늘은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는 말도 아껴둔 채 아들이 살아낼 하루를 가만히 응원해 준다. 그날도 아이는 학교에서 아이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한껏 느끼게 되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은 기억을 갖게 된다. 

'자기표상 & 대상표상'

'자기표상 & 대상표상'이라는 개념이 있다. 타인들과 관계를 맺으며 경험한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고 한다. 대상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된 후에 자기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이 된다. 아이가 주로 속한 집단인 학교에서 아이는 놀림거리가 되기 일쑤이다. 아이에게 같은 반 친구들은 아이를 이해하거나 수용해 주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는 아이에게 '나는 말을 더듬는 사람, 실수를 하는 사람, 친구들로부터 부끄러운 시선을 받는 사람.'이라는 자기 표상(자기 인식)을 갖게 한다. 아이는 친구들로부터 '사람들(세상)은 믿기 힘든 존재.'라는 인식, 대상표상을 가지게 된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의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굳이 묻지 않는다. 아들이 다시금 힘든 기억을 꺼내지 않도록 배려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애써 위로하지 않고, 어두운 마음은 즐겁게 만드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리곤 자주 가던 강가로 아들을 데리고 간다. 아버지는 아들과 가만히 강가를 걸으며 한껏 움츠려든 마음과 수치스러운 감정이 조금 안정되기를 기다려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기다려주고',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봐주며' 일관된 마음을 보여준다. 그리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한다. 


"너는 강물처럼 말하고 있단다."


아버지의 말로 아들에게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아들은 굽이쳐 흐르는 강물이 거칠지만 본연의 모습 그대로 흘러가는 걸 본다. 자신이 고요하고 잔잔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더듬거리는 말로, 자기 본연의 모습으로 말할 수 있겠다고 스스로를 격려해 주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이 말을 더듬거리지 않도록 언어 교정학원에 등록하거나, 새로운 친구들과 사귈 수 있도록 전학을 보내지 않는다. 아들을 붙잡고 하루씩 말하는 연습을 시키지도 않는다. 아들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용납해 줄 수 있도록 도울 뿐이다. 아들을 향한 애정 어린 아버지의 시선은 곧 아들이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되고, 이는 '나는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그래도 괜찮은 사람 같다.'는 자기에 대한 대상항상성을 갖도록 도와준다. 


하이미가 나에게 '아빠도 실수하지만 그래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대상항상성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 다만, 늘 잘해주고 실수가 없는 완벽한 아빠가 아니라, 언제나 자기를 사랑해 주고 선한 마음을 잃지 않도록 늘 노력하는 아빠로 바라봐주기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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