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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v Sep 14. 2023

불안과 불안한 너

그림책 들여다보기

"하성이 치카 안 할래! 유치원에 운이도 안 한단 말이야~~!"

"하성이 유치원에 안 갈래!"


주말이 지난 월요일 아침이었다. 하성이는 집에서, 밖에서 편하게 놀다가 이제 다시 나름의 사회집단인 유치원에 가려니까 불안했나 보다. 늘 하던 양치도 안 하고 싶다고 하는 걸 보니, 뭔가 긴장이 되는 게 틀림없었다. 그런 날에 하성이는 약간의 눈물을 보일 때도 있다. 하성이는 '불안'과 마주했다. 


조미자 작가의 [불안]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다채롭고 밝은 색채로 그려진 그림책인데, 표지를 보면 한 아이가 땅 속 깊은 곳에서 끈으로 무언가를 잡아당기는 듯한 모습이 보인다. 검은색, 파란색, 노란색 갖가지 색깔들로 땅 속이 채워져 있다. 색깔이 감정과도 같다면 땅 속은 여러 감정들이 지내는 집인 마음인가 보다. 아이는 무얼 꺼내고자 하는 걸까, 그걸 꺼냈을 때 아이는 어떤 감정과 마주하게 될까. 


'때때로 나를 어지럽게 하고, 때때로 나를 무섭게 하는 것이 있어. 그것은 가득 차 있다가도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려. 저 아래로 말이야. 그리고 또다시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해. 난 이제 그것을 만나 볼 거야 - 그림책 중에서'


아이가 끈을 힘차게 잡아당기자 자기 몸집에 몇 배나 큰 커다란 새가 부리부리한 눈을 뜬 채로 나타난다. 우리가 불안을 마주했을 때, 그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만 보인다. 하성이는 그날 유치원에 가는 게 긴장되었을 테고, 유치원에서 보낼 하루 일과, 교구 수업들이 어렵게만 보였을 것이다. 집으로 오기까지도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아 더욱 걱정했을 것이다. 아이 앞에 새가 나타났으니 이제 같이 있어야 하지만 아이는 커다란 새와 함께 지내는 법을 알지 못한다. 새를 피해 숨기도 해보지만 역시 속수무책이다. 아이는 끈을 잡아당긴 걸 후회한다. 그림책의 아이가 불안을 피해 다닌 것처럼, 하성이는 늘 하던 양치를 안 하는 투정으로 불안을 지우려 했나 보다. 아니면 불안한 나머지 어떻게든 도망가보려 애쓰는 모습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성이에게 유치원이 사라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새와 아이가 늘 함께 있으면서 새는 어느새 아이보다 작아져 있다. 아이가 어디에 있든 무얼 하든 졸졸 따라다닌다. 아이도 그런 새가 싫지만은 않다. 아이는 조금씩 새와 함께 지내는 법을 터득해 간다. 새와 멀어지려고 하면 할수록 더 가까이 왔었는데,  새가 자기 일상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니 같이 지내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아이는 이제 새와 함께 고민하고, 자기 기분을 새에게 말하기도 한다. 하성이가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현관문을 나섰고, 등원버스를 탔을 것이다. 친구들 틈에 섞여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교구활동부터 짜인 일정에 따라 움직이다 보니 아침에 느꼈던 커다란 마음은 어느새 사라졌을 것이다. 불안을 없애려 하지 않았지만 불안과 함께 시작한 하성이의 하루는 어느새 유치원 일상이 주는 만족감들로 채워졌을 수도 있다. 실제 하성이는 유치원에서 하원할 때 세상 근심 걱정을 모두 끝낸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다. 


아이도 새도 서로가 편안해진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아이품에 기대어 새가 곤히 잠든다.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가고, 번개가 치던날 밤 서로를 꼭 껴안아주면서 그림책은 마무리된다. 아이는 새에게서 자기 모습을 발견했을까. 새를 꼭 안아주는 모습이 마치 자기 마음을 안아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새가 자기에게 기대어 쉴 수 있도록 무릎을 내어주듯 자기 마음을 쉬게 해주는 걸 하성이도 배워갔으면 좋겠다. 하성이가 내 말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될 때 즈음 하성이에게 알려주고 싶어 진다. 

'하성아! 하성이가 유치원에 갈 때 느껴지는 감정은 불안이라는 거야. 불안한 거는 때로 크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하성이가 하루일과 마치고 나왔을 때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없어지기도 해. 가끔씩 나타나서 너를 놀라게 할 때도 있지만 그냥 곁에 두고 지내다 보면 불안한 너를 스스로 이해할 날이 올 거야. 불안한 네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도록 아빠가 도와줄게. 그러다 보면 언젠가 하성이가 스스로 불안과 가까이 지내는 법을 알게 될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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