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를 구성하고 있는 많은 구성성분 간의 다양하고 유기적 협동현상에서 비롯되는 복잡한 현상들의 집합체. - 출처: 두산백과
'다양하고 유기적인 협동현상' 그러니까, 우리 아내가 지금 기분이 안 좋은 것은 내가 칫솔을 쓴 다음에 그냥 그대로 화장실 선반(칫솔꽂이에 넣은 것이 아니라)에 올려놓았기 때문인데, 이와 더불어 남편의 실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과 아내가 어딘가에서 접한 정보(칫솔에는 세균이 많이 살고 있다는) 그리고 다음에도 분명 똑같은 실수를 할 것이라는 는 불안감 등 여러 복잡한 요인들이 합쳐져서 아내의 기분이 안 좋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아내의 심기를 여러 가지 각도로 살펴보는 과정 자체를 '게슈탈트 심리'라고 할 수 있겠다. 표면에 드러난 아내의 심기는 또 다른 형태로 집안 곳곳에 퍼지게 되는데, 나로 하여금 괜히 설거지를 스스로 하게 하는 행동동기를 주거나 슬쩍슬쩍 아내의 눈빛을 살피게 하고, 다음번에는 꼭 칫솔을 칫솔꽂이에 넣어놓고야 말겠다는 다짐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이렇듯 개체의 욕구나 감정 자체를 파악하고 나서 이를 실천적으로 가능한 행동동기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을 '게슈탈트 심리치료'라 할 수 있다. 만일 내가 신혼이었다면 심리적 완성도가 지금보다 덜하기 때문에 아내와의 보이차 타임(티타임으로 부르기도 하고, 실은 서로의 속이야기를 하는 시간이며, 더 실은 지도를 받는 시간이기도 하다.)으로 아내에게 게슈탈트 심리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들었겠지.
"아니! 내 마음을 보라고. 오빠가 보는 게 다가 아니야."
현재는 오랜 기간에 걸쳐 보이차를 마신 결과 표면에 드러난 감정을 다양한 의미의 게슈탈트로 인지할 수 있고, 이를 유의미한 행동으로까지 연결할 수가 있다. 참! 내가 아내의 심기를 알아챈 순간, 얼굴과 표정과 아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매우 선명해지고 관심의 초점이 되는 데 이를 '전경'이라 하고, 그 외의 부분을 '배경'이라고 한다. 전경과 배경은 순간마다 바뀌기 마련인데 아내의 마음이 풀리는 순간 아내 등 뒤에 보이지 않던 벽시계가 눈에 들어오고 이제 곧 야구가 시작할 시간이라는 걸 인지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를 전경과 배경의 교체라고도 한다.
게슈탈트는 단순히 부분의 합에 그치지 않고 맥락 가운데 유의미한 의미로 개체의 합을 바라보는 걸 중요시하는데 이를 설명해 주는 그림책으로 에드 영이 그리고 그린 [일곱 마리 눈먼 생쥐]가 있다. 일곱 마리의 눈먼 생쥐들은 저 멀리 거대한 물체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는, 한 마리씩 자기가 느끼고 온 걸 들려준다. 거대한 물체의 일부분들을 느끼고 와서는 기둥이라고 말하는 가 하면, 사실 코끼리인 그 물체의 실제 부분들(머리, 팔, 다리 등)과는 거리가 먼 각자의 느낌을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다른 생쥐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다음에 출발한 흰 토끼가 드디어 코끼리인 것 같다고 말을 한다. 이 그림책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에 대해서, 배우자에 대해서 또는 내가 속한 조직이나 사회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게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던져준다. 맥락을 보려는 노력이 '사실'에 다다르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이 그림책은 내가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또 다른 누군가가 사실을 알기 위한 노력의 흔적임을 생각하게 하며 공동체 적 의미를 주기도 한다. 다른 이의 앎 위에 나의 앎이 더해진 것이다. 한편, 마지막 일곱 번째 생쥐가 다른 생쥐들이 말해준 정보들의 합을 들은 후에, 거대한 물체를 경험하면서 결국 코끼리라는 '사실(어쩌면 생쥐들의 목표)'에 이르는 장면이 있다. 하루하루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숱한 행위들이 모이고 모여 결국엔 유의미한 의미로 연결이 되기도, 목표를 이루기도 할 수 있다는 위로를 얻게 된다.
내면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전경과 배경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하는데, 이 경우 배경으로 물러난 자신의 감정이나 욕구가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게 된다고 한다. 이처럼 완결되지 않은 게슈탈트를 '미해결과제'라고 한다. 배고픔의 욕구가 있는 상황에서는 놀고 싶기보다 배고픔을 먼저 해결하고 싶은 게 당연한 것처럼 해소되지 못한 인간의 욕구는 배경에 남아있는 채로 계속해서 전경으로 떠오르려고 한다. 해결되지 않은 욕구는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만일 내가 칫솔로 인한 아내의 불편한 심기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면(먼저 알아차리고 해소해 주려고 노력하는 게 남편의 역할이라고 배웠음.), 해결을 원하는 아내의 감정은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채 배경으로 물러나버리게 된다. 아내 또한 그 순간에는 불편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화난 마음이 가라앉고 장면이 바뀌어 자신이 불편했는지 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문제는 다음번 내가 칫솔을 또 칫솔통에 꽂아놓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 이전에 해결되지 않았던 불편한 감정이 전경으로 떠오르려고 꿈틀대다가 동일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버리게 된다.
두 배가 넘는 양의 '혼남'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내 안에, 상대(아내, 특히 아내) 안에 쌓인 감정이 잘 해소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게슈탈트 심리치료에서는 '지금-여기(here & now)'를 강조한다. 미해결과제는 계속해서 전경으로 떠오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수시로 모습을 드러내는 그 과제를 알아차리고 그 감정이 무엇이며, 어떤 일로 발생했고,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 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올리버 제퍼스가 쓰고 그린 [마음이 아플까봐]라는 그림책이 있다.
할아버지는 소녀가 세상을 이해해 가는 데 커다란 안내자와 같았다. 두 사람은 늘 함께였다. 할아버지는 세상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으로 가득한 소녀가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갈 수 있도록 소녀와 나란히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았고, 바다에서도 함께했으며, 집 안 작은 도서관에서도 열띤 세상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와 함께 알아낸 세상의 수많은 사실들 중에 '가까운 이의 부재'는 없었던 것일까. 소녀는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실 앞에서 그 감정이 다시 올라오지 못하도록 담아두기로 했다. 마음이 아플까 봐. 소녀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딘가에 담긴 그 감정은, 그 미해결과제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까지도 담아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더 단단히 닫혀버린 마음은 이젠 스스로 열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대로 굳어져버릴 것 같던 마음은 호기심 많은 한 소녀를 만나면서 변하게 된다.
해결은 고통을 수반할 때가 있다. 격한 감정들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다. 우리는 소중한 이의 부재가 주는 고통 때문에 또는 스스로 저지른 실수가 주는 수치심 때문에 직면하기가 어려워 과제를 잠시 밀쳐둘 때가 있다. 밀어둔 그 감정은 언제라도 해결을 요하며 불쑥 튀어나올 때도 있고, 시간이 더 흐르면 그것마저도 무뎌져서 못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소녀가 느낀 할아버지의 부재를 할아버지가 와서 해결해 줄 수 없다. 소녀 스스로 그 감정을 조심스럽게 느껴보고, 어려운 마음을 가만히 보듬아주며, 상실의 아픔을 느꼈을 그때의 자기 손을 잡고 한 걸음씩 걸어가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