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믿음 조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v Mar 22. 2024

더 큰 존재 안에서의 나

그리스도의 편지 - 첫번째

올해 포항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 3월에 내리니 봄비가 맞다. 살던 곳을 떠나 흥해 양백리 시골에 내려온지 이제 2주가 지나간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마당있는 집에서 흙 만지며 키우고 싶었다. 아이들 때문이라는 건, 누군가 왜 내려왔냐고 묻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적절한 답변거리다. 실은, ‘거리두기’를 위해 내려왔다.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적당한 거리두기가 그들을 좋은 사이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게 가족일지라도. 떠나오기까지 거리두려는 이들과 참 숱한 대화들을 나눴다. 우리 부부가 왜 떠나려 하는지, 왜 지금이어야 하는지, 그게 왜 우리를 살게 하는 건지. 대학생활에 한창이던 즈음, 지금처럼 살던 곳을 잠시 떠났던 적이 있었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미국 시애틀 먼로라는 아주아주 시골로.     


그때도 ‘거리두기’가 필요했었다. 나와의 거리두기. 내가 누구인지 알고싶었다. 나는 누군가의 아들, 대학생, 동아리 회장, 교회오빠, 또 다른 누군가의 친구이자 동생이거나 오빠이기도 하지만, 그런 타이틀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그때는 왜 휴학했는지를 묻는 이들의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준비하지 못했다. 그냥 ‘일시정지’가 필요해서, 더 학교를 다니기는 힘들 것 같아서 멈췄다고 했던 것 같다. 떠나는 이들과 보내는 이들, 돌아온 이들이 북적대는 공항이 주는 뭔지 모를 긴장감, 설레임이 좋았다. 미국에서도 왜 왔냐는 질문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미국에 먼저 다녀온 선배들이 알려준대로 호기롭게 여행이라고 답은 했지만, 어디로 가는지가 명확하지가 않았다. 그 때문에 무서운 흑형의 눈초리를 받아야 하며, 두어시간 죄 지은(?) 이방인으로 대기해야 했다. 미국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시간이 지나 또 그곳을 가고 입국심사관을 만나게 되면 당당하게 말할만한 답변이 생길 것이다. 내가 지낼 곳은 시애틀 먼로에서도 더 깊이 들어가는 시골이었다. 그냥 화장실 세면대에서 나오는 물을 마셔도 괜찮은 곳이었으니까. 회색의 건물보다 초록의 잎사귀들, 커다란 나무가 눈에 가득 담기는 그곳이 참 좋았다. 7월-8월의 시애틀은 비가 참 많이 내렸다. 지금의 포항과는 달리 여름비가 맞겠다. 그때의 빗소리, 창가에서 보이던 비에 흠뻑 젖어들던 나무, 잎사귀가 아직도 선명하다 그때의 시애틀은 우기였으니까, 일주일이면 5일 정도는 비가 내렸다. 우중충한 날들이 지속이 되니 도시 자체가 무겁고, 우울한 느낌이 가득했다. 그래서인지, 듣기로 이곳엔 마녀들의 성지가 있다고 했다. 유명한 일본공포영화인 ‘링’의 촬영지도 시애틀이라고 했던 것 같다. 거기에 지내던 한인분은 시애틀에 사는 이들이 비에 익숙해서 적당한 비에는 우산도 쓰지 않는다는 농담도 들려줬다. 이쯤되니 이렇게나 비가 많이 내리는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유가 뭘까가 궁금해졌다. 얼마지나지 않아서 질문은 말끔히 해소되었다. 그곳 사람들이 ‘하늘이 열린다’고 표현하는 때, 무거운 우기를 지나 화창한 햇살을 내려받을 수 있는 때를 맞이했다. 정말 환상적이리만큼 아름다운 하늘이었다. 오래 비오던 날, 늘 비에 무겁게도 젖어들어있던 나무, 잎사귀에게 그리고 이때를 위해 참고 기다린 시애틀러(Seattler)에게 내려주는 선물과도 같았다. 아기자기한 우리나라의 자연과는 달리 거대하고 광활한 미국의 자연이 눈에 들어왔다. 그 시골길을 혼자 걸었다. 걷다가 오름직한 동산 꼭대기에 올라갔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커다란 나무들이 열을 맞춰 줄을 서있었고, 아득히 멀어지는 지점에도 희미한 녹색이 가득했다. 그때의 내가 품었던 고민, 답을 알 수 없는 숱한 질문은 작게만 느껴졌다. ‘더 큰 존재안에서의 나’를 발견했다고 해야할까. 답을 찾았다고 하기보다, 질문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어리숙한 비에는 우산도 잘 펴지 않는다는 농담을 들려줬던 그 한인, 간사님으로부터 한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됐다. 교회 안에서, 예배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자연, 불어오는 바람, 청명한 하늘을 통해서도 신적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거라고 알려주셨다. 그분의 자취를 곳곳에 심어놓으셔서 우리가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거라고. 더 큰 존재 안에서의 나를 발견하도록 도와준 그때의 자연이 그렇게나 아름다웠던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이제로부터 맞이하는 포항 흥해읍 양백리의 풍경, 내 눈에 담긴 아기자기한 자연은 어떻게 기억될까. 포항의 자연 속에 심어놓으신 하나님의 자취가 왜 내려왔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할지 알려줄거라 생각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