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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훈주 Dec 07. 2024

16. 가짜가 있어야 진짜가 완전해!

규현. 전국 카테일 연합회 입단 테스트에 가다!

제논의 역설, 톰슨의 램프의 역설, 펜로즈의 삼격형.

그 말도 안 되는 것들이 한창 흥미롭다 느낄 때가 있었다.


선생님. 그래서 어디부터가 강이고 어디부터가 바다예요?

그런 건 시험에 안 나오니까 걱정 마.

아니.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나가. 헛소리할 거면. 나가.


역설은 그냥 말장난일 뿐. 

그 안에 어떤 뜻도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 그럼 다들 모였나?"


칵테일 연합 동아리 방 문 앞에서 만났던, 뺴빼 마른 사내는 살짝 들뜬상태다.


동아리회관 문 앞에, 저녁 7시에 몇몇 애들이 모였다. 

아무도 없어 뻘쭘할 줄 알았는데 사람이 있단 게 놀라웠다.

이런 말도 안되는 동아리에 사람이 온다고?


아직 축제 기간이라 소란스러웠지만 동아리회관은 조용했다. 

이 수상한 모임에 또 누가 나오나 싶어 힐끗 얼굴을 보아하니 다들 결연한 눈빛이라 당황했다.

 아니. 이게 그렇게 비장한 거냐고. 그보다 음습하게 모여 있으니 여간 수상해 보이는 게 아니다. 지나는 학생들이 흘낏 처다보는데 여간 이상하다 생각하는게 아닌 듯 하다.


"그럼 가자고."


마른 사내는 동아리회관 지하 계단을 내려갔다. 아무런 말 없이 마른 선배를 따라 지하 계단을 내려가는데 마치 지하 던전으로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동아리회관에 이렇게 깊은 지하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4번이나 빙빙 돌아 지하에 다다랐다. 


지하에 있는 동아리실은 지상 동아리실과는 조금 분위기가 달랐다. 거대한 대야 3개에 물이 가득 담겨 복도에 늘어져있고, 여러 동아리 전단지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곰팡이 냄새가 나는 듯했다. 흡사 가보지 않은 할렘가가 이렇지 않을까동아리 이름들도 역시 심상치 않았다. '하천생태계연구소', '흑인힙합계승회', '미래전략예측소' 등등. 그리고 동아리실 끝엔 작은 강당실이 있었다.



"입단식 하기 정말 좋은 날이야. 이런 날엔 교수님들에게 걸릴 일이 없다고."


마른 사내가 음흉하게 웃으며 강당 문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나갈까. 역시 수상해.

 단상엔 테이블 하나가 길게 놓여 있었는데 거기엔 위스키 잔과 여러 보틀이 늘어져 있었다. 테이블 앞엔 동아리 선배로 보이는 몇몇 사람이 서 있었다.


"다들 오느라 수고했어. 전국 칵테일 연합회 입단식을 시작하기 전에 축하주 한 잔씩 받으라고."


동아리 회장처럼 보이는, 가장 중앙에 서 있던 남자가 잔을 들었다. 우리는 얼떨떨하게 단상 위에 올라 잔에 담긴 술 한 잔씩을 받았다. 


"그럼 건배!"


윽. 쓰다. 이게 양주구만. 술 따라 식도가 어디에서 어디까지 있는지 확실히 알 것 같다. 몸이 확 더워진다. 


"좋아. 오늘 테스트는 방금 마신 위스키가 어떤 건지 맞추는 거다. 테이블 앞에 놓인 여러 병들, 다 마셔봐도 좋다고!"


그리고 남자는 씩 웃으며 한 마디 더 했다.


"아! 동아리 회관에선 술 마시는 건 금지야. 주류 반입은 당연히 안되고. 지금부터 30분 후엔 흑인힙합계승회 친구들이 이 강당을 쓰기로 예약되어 있어. 그러니 그전에 빨리 맞추는 게 좋겠지? 혹시 질문 있는 사람?"


"저기! 정말 여기 동아리 실엔 스프링뱅크 33년이 있는 건가요?"


"그럼. 모든 빈티지 위스키가 다 있다. 지금 너희 테이블에 있는 위스키 중 하나일지도 모르지."


반응은 뜨거웠다. 그게 그렇게 귀한 술인가? 멍 하니 상황을 지켜보는 중에 다른 사내들은 마구 병에 담긴 위스키들을 맛보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러다가 교수님에게 걸리면 어떻게 되는 건가. 아까 마신 위스키 맛은 예전에 까먹었다. 무리다. 한 잔이라도 더 마시면 쓰러질 것 같다. 그나저나 가현 선배는 여기 있는 게 맞긴 한가...?


"얘. 너는 왜 안 마시니?"


이미 오른 취기에 어지러운 찰나, 한 여 선배가 옆에 쑥 나타났다.


"위스키가 이렇게 독한 줄 몰랐어요."

"아유 저런."

"혹시 가현 선배 알아요?"

"어머. 단도직입 적네. 가현이는 왜?"

"그 선배. 여기 동아리에 있나 해서요."

"그건 네가 여기 입단식 통과하고 직접 찾아보지 그러니?"

"여기 있는 술이 다 뭔지도 모르겠는걸요."


여 선배는 웃었다.


"얘. 여기 있는 술들이 다 진짜 같니?"

"에?"


병 하나를 잡아 조심스레 술을 따랐다. 달다. 이건 술이라기 보단 시럽 같은데?

당황해서 선배를 돌아보니 웃는다.


"그럼. 수고하라고."



"원래 진짜는 가짜가 있어야 빛나는 법이지."


왜 이런 기이한 입단식을 하냐 묻었을 때 동아리 회장은 웃으며 말했다.


"가장 욕심 없는 사람이 가장 좋은 걸 차지하는 법이거든."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생각했지만 한 편으론 맞는 말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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