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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훈주 Nov 15. 2024

너를 만난 순간을 기억하면 너는 내게 대학이었다

규현. 20대 추억을 돌아보면 모두 너였다.

가현 선배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교양 강의였다. 가현 선배는 기억하지 못할 거다.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이 아니면 기억하지 못하는 선배니까. 그러니까 가현 선배가 나를 추억하는 것보다 나는 좀 더 앞서 가현 선배를 추억하는 거다.




교양 과목 이름은 ‘성과 사랑의 철학’. 대학교 일 학년에겐 꽤나 자극적인 제목이다. ‘성’이란 게 그랬고 ‘철학’이란 게 그랬다. 동년배들은 아마 ‘사랑’이 더 와닿았겠지만 내겐 ‘철학’이 그랬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대부분 일 학년들이 과목 이름에 이끌려 신청하고 대부분 실망하는 과목이었다. 늙은 교수가 강의실에 들어왔다.


“둘 씩 짝을 지어서 조를 만들어 오세요. 남녀로.”


늙은 교수에겐 빛나는 구석이 없었다. 그에겐 ‘성’도 ‘사랑’도 ‘철학’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남녀로 짝을 지어 한 학기 동안 조별과제를 진행한다는 수업 방식은 꽤나 흥미로웠다. 당시 나는 숫기가 없었고, 강의 신청을 내가 듣고 싶은 걸 선택하기보단 친구들과 함께 들을 수 있는 걸 신청하는 것이 일반적이란 것을 몰랐다. 하나 둘 짝을 지어 가는 동안 나는 묘한 기대감과 우울감이 교차했다.


“아직 짝을 짓지 못한 학생은 손을 드세요.”


나는 부끄러움에 손을 들었다. 흘깃 주위를 돌아보니 몇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남은 이들은 노 교수의 호명에 하나 둘 짝을 지었다. 


“그럼 오늘 수업은 마칩니다.”


수업 첫날은 언제나 빠르게 마치지 마련이었다. 노 교수는 다음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강의 계획서 참조하라 하였고 그대로 나갔다. 대학 수업이 시간표보다 빠르게 끝난다는 걸 알지 못했던 나는 꽤나 애매해졌다. 하나 둘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동안 나는 내가 생각한 대학 강의와 실제 사이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생각에 잠기고 있었다.


“저기.”
 

빠르게 비어 가는 강의실에 멍하니 있을 때였다. 아까 강제로 짝이 지어진 팀원, 여자가 다가왔다.


“이 수업 계속 들으실 거예요?”


수업을 신청하고 정정할 수 있단 건 몰랐기에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다. 그 알 수 없는 말을 이해하고자 가만히 있는 동안 여자는 말을 마구 풀어놓았다. 이번이 재수강이라는 것과 원래 좋아하는 교수님이 따로 있다는 것과 이번 수강 신청을 하려는 날에 노트북이 고장 나서 수강 신청을 망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 요즘 휴학할까 고민 중이라는 이야기까지. 나는 잠자코 듣고 있었다.


“여하튼. 저는 이번 수업 취소하려고요. 그런데 미리 알려주긴 해야 할 거 같아서요.”

“아. 네. 뭐. 괜찮아요.”

“저 때문에 짝 없어져서 난처해질까 봐 이야기해야 할 거 같았어요.”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혼자서도 할 수 있겠죠.”

“만약에 수강 취소하신다면 다음 학기 때 같이 수업 들어요. 제가 짝 해드릴게요.”

“네. 고마워요.”


여자는 꾸벅 인사하고 강의실을 나갔다. 여자가 나가는 것을 멍하니 보다 연락처 하나 없단 사실을 깨달았다. 다음 학기 때 다시 이 수업을 같이 듣잔 말이 마치 무도회에 함께 가자는 편지를 받은 것 같은, 그러니까 일종의 데이트 신청 같은, 그런 묘한 감정에 심장이 뛰었다. 


교수를 찾아가 함께 할 짝이 수강 포기를 했다는 것과, 그래서 짝이 없어 수업이 어려울 것 같다는 것과 함께 당신이 지어준 짝을 다시 만나고 싶은데 연락처를 알 수 없어 난감하다는 말을 하기까지 꽤 오랜 날을 망설였다. 강의 취소는 인터넷에서 클릭으로 할 수 있었고, 수강생 명부는 교수보단 학과 사무실 또는 다음 강의 시간에 조교 통해 명단을 확인 부탁할 수 있단 걸 알기에도 나는 어렸다. 그래서 교수를 찾아갔고, 교수는 흐뭇하게 날 바라봤다.


“좋은 청춘이다.”


빛나는 것 하나 없어 보였던 그의 얼굴이 환하게 웃었다. 청춘이니 달리거라. 응원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학생 명단이나 번호를 잘 몰라요. 그건 조교에게 물어봐야 할 거 같은데.”

“아?”

“그래도 특별히 제가 알아봐 줄게요. 꼭 다음 학기 때 같이 손 붙잡고 와요.”


얼떨결에 ‘네’라고 대답했지만 그녀는 듣고 싶은 교수가 따로 있다고 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었지만 그땐 그렇게 대답해야 번호를 알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 순간이 돌아보면 가장 대학생다웠던 순간이었다. 그녀의 이름이 ‘가현’이었고 나보단 한 학년 선배였다. 정말 일지 알 수 없는 다음 학기 함께 수업 듣자는 그 말을 기대하며 조교에게 얼래 벌래 번호를 받았다. 카톡에 번호를 저장했고 프로필 사진을 보고 다시 정말 맞는 번호인지 확인을 했다. 조금은 무심해 보이는 얼굴, 조금은 화난 것 같기도 한 얼굴, 하지만 묘하게 고양이처럼 끌리는 분위기를 한 얼굴. 이 감정이 호기심인지 또는 그 흔히 말하는 사랑인지 알 수 없었다. 학교에 벚꽃이 피고 중간고사가 다가오는 시점까지, 시험과 관련 없이 학교엔 축제가 열렸고 마음은 심란해졌다. 





카톡 메시지를 보낼까 했지만 적당한 인사말을 찾지 못해 시간을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가현 선배를 만난 건 다시 교양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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