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케이크가 호수에 빠졌을때

가끔 그런것들이 있다. 당근 맛이 나지 않는 당근케이크.

by 황훈주

“역시 맛 없어.”


미현은 미간을 찌뿌렸다. 당근케이크를 옆으로 쓰러트리더니 빵 사이에 있는 생크림을 긁는다.


“이런 케이크는 그냥 블랙홀에 던져 넣고 싶어.”

“갑자기 블랙홀?”


그래 블랙홀. 그냥 내 눈 앞에서 사라지면 좋을 거 같아. 근데 그거 알아?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모든 물체가 찌그러진다는거야. 근데 중요한 건 그렇게 녹고 찌그러진 것이 어느 다른 차원에서 다시 나타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거지.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니가 블랙홀에 당큰 케이크를 던져도 다시 너의 책상 앞에 당근 케이크가 놓일 수도 있다는 거지. 그건 참 싫다. 그치? 그럼 제일 확실한 방법은 먹어 치우는 거야. 그럼 다시 눈 앞에 나타날 확률이 적어지지 않을까?

108910f6d2a69ef6480f4022aefcc3e2.jpg



미현은 참 실 없는 이야기다 싶었다. 당근케이크 투정을 부리는 건 사실 정말 당근 케이크가 싫어서가 아니다. 정현이 애써 미현이에게 당근 케이크를 먹게 하려는 것도 정말 당근 케이크가 맛있어서도 아니다. 사실 모든 게 그렇다. 당근 케이크에선 당근 맛이 나지 않고 우리 사이에선 꼭 하고 싶은 말을 당연히 하진 않는다. 서로 그렇게 그 무언가를 돌아가며 주위를 맴돈다. 우리 사이엔 깊은 호수가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당근 케이크는 호수에 깊게 빠진다.


정현이는 영상 편집을 했고 미현이는 회계사로 일을 했다. 그들은 서로 낮이 밤이였고 밤이 낮이었다. 미현은 밤에 퇴근했고 정현이는 밤에 일을 시작했다. 서로 만날 일이 없는 그 둘이 만나는 것이 참 웃긴 일이다.


“그래도 니가 한번 먹으면 좋아할 거 같아서 시켜봤어.”

주문한 커피와 함께 딸려 온 당근케이크 한 조각을 정현은 멋쩍게 웃으며 테이블에 놓았다. 자. 한 입만 먹어봐바. 생각보다 나쁘지 않을지도 몰라.


“아. 몰라. 니 돈 주고 샀으니까 내가 뭔 말을 더 하겠어.”


미현은 그런 그가 싫지만은 않았다. 그가 하는 일들. 밤에 달을 찍겠다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그가 웃겼다. 세상의 모든 외로움을 네게 알려주고 싶어. 아직 니가 알지 못하는 외로움을. 언젠가 정현은 말했다. 그 말이 퍽 쓸쓸하게 느껴져서 미현은 싫지 않았다. 웃는 그가 슬픔을 말한다는 게 웃겼다. 그가 당근 케이크를 좋아하는 이유도 그와 비슷할 지 모르겠다.


IMG_6351.jpeg
IMG_6349.jpeg



미현은 미간을 찌뿌렸다. 당근이 뭐야. 당근이. 아주 그냥 선 넘네 정말. 당근으로 케이크를 만든다고? 참나.


“그래도 가끔 먹으면 맛있어.”


정현은 말을 얼버부렸다. 당근케이크는 당근과는 다른 존재다. 정말 그렇다고 그는 생각했다. 당근 맛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고. 이런 맛을 알지 못하는 당신이 정말 불쌍해요.

가끔 그런것들이 있다. 커피를 마시지 못하는 바리스타, 술을 하지 못하는 선술집 사장님, 당근 맛이 나지 않는 당근케이크. 정현은 그런 것들을 사랑했다.


“뭔가 반전이 있는 거 같잖아.”

하지만 미현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게 분명해. 너무하잖아. 질소 가득찬 과자 봉지도 아니고. 서로 다른 그들이 함께 있는 것도 참 웃긴 일이라고 사람들은 보기도 했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1화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