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접실에서 기다린 너는 오지 않았다

H는 억척스러움을 싫어했다. 어머니 분홍 고무장갑이 떠올랐다.

by 황훈주


한 여자가 카페에 들어온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이곳저곳 자리를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한다.

커피가 나올 때까지 넓은 카페 모든 자리를 한번 씩 앉더니 결국 처음 앉았던 테이블에 앉는다.

싱그러운 젊음은 미숙했고, 아름다움을 스스로 알아차릴 땐

이미 꽃은 지기 마련이다.

미숙함은 아름다움으로 포장되곤 했다.

그런 면에서 J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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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예쁜 걸 아는 여자는 다르다.

당당하고, 우아하게 요구할 줄 안다.

거절 당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J는 그런 여자였다.

어렸어도 미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J를 좋아했다.


H는 억척스러움을 싫어했다.

어머니 분홍 고무장갑이 떠올랐다.

나이 든다는 것은 시간이 없다는 것.

늙은 이들은 언제나 급했다.

버스를 새치기 했고, 닫히는 문을 붙잡았고, 원하는 것을 크게 소리쳤다.

H는 늙는 것이 두려웠고 그래서 젊음을 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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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를 기다린다.

‘오랜만에 한번 얼굴이나 보자’

H는 이제 자신이 늙어감을 인정했다.

먼저 매달리는 것은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H는 자신이 죽어감을 느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신도 억척스러워졌다.


아까 카페를 방황했던 여성 앞에 훤칠한 남자가 앉는다.

여자의 얼굴은 환하게 폈고, 남자는 무언갈 정리하듯 바지에 손을 찔러 넣고 있었다.

한때 H도 J와 이곳에, 저렇게, 함께 마주보고 웃었던 날을 기억한다.

J는 유학을 갔고, H는 군대를 갔다.

J가 돌아왔을때, H는 아직 군대에 있었다.

J는 곧 다시 과CC가 되었고 H가 제대했을 때 남을 곳은 없었다.

그 둘은 시간표를 함께 짜고 함께 수업을 들었지만 딱 거기까지인 사이었다.


둘 사이엔 그 무엇도 없었기에 이별이랄 것도 없었고,

H가 느끼는 아쉬움은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J가 말했다.

“나 이제 결혼해. 너도 꼭 와.”

숨이 차올랐지만 H는 웃으며 그러겠다고 말했다.

붙잡고 싶지만 붙잡을 것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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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는 환하게 웃으며 카페를 나갔다.

시간이 지나도 오히려 젊어지는 이들이 있다.

당당해지고, 탄탄해지고, 화사해진다.



H는 어두워진다.

물 속 깊이 가라앉는다.

카페 이름을 굳이 번역하면 응접실이지만

H가 기다리는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한때 함께 마주보며 웃었던 날은,

홀로 기억한 그만의 추억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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