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힘들 때마다 화분을 사는 친구가 있었다.
그런 그가 일주일동안 회사를 나오지 않았다.
병가라고 했다.
“3년 기른 화분이 죽었어.”
평소 그에게 일종의 흥미를 느끼고 있던 나는 그가 다시 돌아왔을 때 물었다.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건 몇몇 특이한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화분을 사는 것 외에도 꼭 이빨은 하나당 7번씩 문지른다는 것,
팬티는 오후 6시가 지나면 공중 화장실에 들어가서라도 뒤집어 입는 것 등이다.
그에게 기이한 습관의 이유를 물으면,
자신이 죽음을 건널 수 있었던 이유라고만 말했다.
그런 그는 원룸에 살았다.
예전에 큰 사업을 했다는 그는,
몇 달 전만해도 전망 좋은 오피스텔에서 살았다고 했다.
그에게 있어 원룸 생활은 충격이었다,
원룸 중 창가가 도로를 향한 곳은 에어컨 실외기가 내부에 있는 경우가 종종있다.
원룸에 오래 사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에어컨을 틀 때면 베란다 안쪽에 있는 실외기가 더운 연기를 마구 뿜어내는 집이다.
그의 집도 그랬다.
그는 원룸으로 옮기며 수많은 화분을 시골집에 내렸다고 했다.
그는 언젠가 다시 좋은 오피스텔로 돌아갈거라고 했다.
“그런데 화분을 키우는 거랑 아픈거랑 무슨 관련이 있는겁니까?”
내가 물었다.
“식물이 대신 아파주거든."
그가 답했다.
“식물이 대신 아프다고요?”
나는 다시 물었다.
“식물은 자신을 돌보는 주인이랑 영혼이 연결되거든.”
그는 서글프게 웃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식물에겐 각각 영혼이 있는데
이들은 반려동물과 다르게 주인과 영혼이 연결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주인이 다치면 식물도 아픔을 느낀대. 비웃지마. 이건 실험으로도 증명된거니까.”
그는 진지했다.
식물은 주인과 영혼이 연결되어 있어 주인이 식물을 지극정성으로 키우면
위험한 순간 주인 대신 식물이 죽어준다고 그는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일들을 해왔지만 무사히 목숨을 보전한 이유지.”
“그러면 이번엔 왜 식물이 죽었는데도 아팠던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야 당연히 내 실수로 식물을 죽였으니까.”
그가 말했다.
식물들은 햇빛을 보고 자라야하는데 원룸은 최악의 조건이었다.
그나마 햇빛이 조금이라도 들어오는 베란다에 화분을 올려 놓았고,
그 사실을 까먹은 체 에어컨을 틀었다.
베란다에서 나오는 뜨거운 실외기 바람에 식물은 점점 말라 죽었다.
그렇게 3년 동안 그의 목숨을 지켜주던 화분 하나가 인간의 욕심 속 말라 비틀어졌다.
“식물들은 지금껏 나를 지켜줬는데 나는 내 손으로 식물을 죽였다는 사실이 괴로웠지.”
그는 아마 집에 있든 다른 화분들도 모두 자신을 저주하고 있을거라 생각했다.
“이들을 아무리 멀리 떨어트려놓아도 영혼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 하나 죽기 전까진 이 저주는 끊어지지 않을거야.”
그의 작은 화분 살인사건은 갑자기 줄어든 세계 속에 일어난 우발적 범행이었으나
그로 인해 그는 더이상 존중받지 못하는 주인이 되었다.
모든 화분을 그의 손으로 숨을 끊어놓지 않는 이상,
그에겐 더 남은 목숨이 없단 사실이 그를 두렵게했다.
아… 얼마나 비정한 세상이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