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하고 있어도 사랑이 무엇인진 알 수 없었다.
"한국은 조선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어."
늙은 대학 교수는 말했다.
그 말은 일종의 저주 같았다.
부정할 수 없고 떠날 수 없는 저주.
"넌 날 고치려만 들지.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보고. 난 사랑을 하고 싶은거지. 지적 받고 싶은 게 아니야."
Y는 차분했다.
소리치는 것이 무서운 것이라 생각했는데
모든 감정이 끝난 후 단조롭게 모든 것을 정리하는 문장들이 더 가슴에 박혔다.
그렇게 관계는 끝났다.
"내가 보니까 그래. 서양 문학과 우리나라 문학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고."
H의 술 사준다는 이야긴, 돈은 내가 낼테니 꼰대짓을 참으란 뜻이었다.
"생각해 봐. 우리가 왜 불안해 해야해? 정말로 불안한 게 맞아?"
그의 말에 답을 하지 못했다.
30대가 되고 나서 항상 불안했다.
어른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억지로 붙잡은 것들엔 꼭 탈이 났다.
중국 전족의 일그러진 발.
커야할 것을 붙잡아둔다고 해서 그대로 멈추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그러지고, 버틴 흔적은 흉장이 아닌 흉터가 된다.
"서양에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이해하는 과정을 그린다면, 우린 아둥바둥 이상향을 이뤄가기 위한 노력을 보여준다고. 지금도 괜찮아가 아니라 더 나은 내일이 있을거란 희망이 우릴 목 조르는거야."
H의 말은 취한 사람치곤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긴 했다.
Y는 울고 있을거다.
몇 번의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우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서로 어른이 되지 않고 우리의 길을 걷자 이야기할 때
왜 서로 앞날에 대한 아픔들을 이겨내야 한단 사실은 보지 못했을까.
Y가 보고 싶었다.
이건 사랑일까.
우는 얼굴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이건 사랑일까.
한때 사랑은 의지라고, 서로 아파도 미래를 붙잡고 가는 거라 고백했던 날들이,
그 말들이 나를 아프게했다.
늙은 교수의 말은 맞았다.
우린 결코 성리학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 사실에 무력감을 느끼진 않았다.
그저 우리가 다른 시대에 다른 곳에서 만났더라면
행복했을까 그려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