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걸려서 미안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 대해 나는 인사를 늦게 건낸다.

by 황훈주

김영하 소설 중 <악어>란 단편이 있다.

허약한, 어쩌면 하얀 피부를 가졌을지 모르는 소년은,

변성기를 지나며 아주 아름답고 신비로운 목소리를 가지게 된다.

그는 그 목소리로 유명해지지만,

갑자기 찾아왔듯 갑자기 사라진 목소리로 인해

좌절하는 내용.


아. 아마 그 소년은 자살을 하게 되었던가?

김영하의 소설은 대개 그런 식이었다.

벼락을 맞고, 죽고, 엘리베이터에 끼고, 섹스하고.

나는 옥수수가 아니다. 나는 옥수수가 아니다. 나는 옥수수가 아니다.

군대에서 봤던 <옥수수와 나>도 나름 감명깊게 읽었다.

밤새도록 섹스하는 이야기였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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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소설을 좋아했기에

그가 쓴 책들을 다 보았지만

어쩐지 <악어> 이야기는 계속 마음에 남아 있다.

마치 수면 속 악어가 잠자고 있듯,

언제 악어때가 나타날지 몰라.


내게 쉽게 왔던 것들이 많았다.

학창시절 왕따를 당하는 경험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어른이 되어 알았다.

나는 친구란 개념이 딱히 없었다.

이야기 걸면 다 좋아했고, 정신 차려보면 옆에 누군가 있었다.

한번은 학교 사물함 위에 올라가 옆에 있는 친구를 보며 생각했다.

‘우린 언제부터 친구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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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왔던 것들이 많다보니

이것들이 어디서 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야기를 지어내며 그들의 흔적을 추측했다.

나만의 악어를 잠재우는 방법이었다.

그들이 떠나도 슬프지 않게.

나는 이이야기를 지어냈다.


축구를 좋아했던 J와는 연락이 끊겼다.

사업가가 되겠다던 K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많은 것들이 나타나고 사라졌다.

떠난 후에야 의미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어

매번 미안하다.


그리고 남겨진 것들에 대해

나는 인사를 늦게 건낸다.


너무 늦어져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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